'하모니카 올림픽' 韓 최초 우승
클래식·국악 등 전방위 활동
'가브리엘의 오보에' '무숙자' 등
엔니오 모리코네 대표곡 연주
"다채로운 악기 매력 들려줄 것"
13일 서울 사당동 음악연습실에서 만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35)은 하모니카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중적이고 친숙한 악기지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하모니카 종류만 150여 가지입니다. 입의 위치, 들숨과 날숨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고 입 모양에 따라 울림을 조절할 수 있어요. 피아노, 국악기 등 다른 악기와 앙상블을 이루기도 쉽죠.”
‘하모니카 솔리스트’로서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연을 펼쳐온 박종성이 이번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대표곡을 하모니카의 깊은 음색으로 들려준다. 오는 2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시네 콘서트’에서다. 그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시네마 파라디소’ ‘러브 어페어’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을 연주하고 장석범, 김회창 등 동료 하모니시스트와 트리오(3중주)를 이뤄 ‘석양에 돌아오다’ ‘무숙자’ 등을 합주한다. 피아노 반주는 조영훈이 맡는다. “성인 남성 어깨 넓이의 코드 하모니카로 박자를 맞추고, 두꺼운 베이스 하모니카가 저음을 맡습니다. 하모니카 석 대만으로 오케스트라와 맞먹는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드릴 겁니다.”
박종성은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에 선다. 몸체 옆에 밸브가 달려있어 피아노처럼 연주할 수 있는 악기다. 밸브를 누르면 피아노 검은건반처럼 반음을 높이거나 낮춰주고 떼면 흰건반을 누르는 것과 같다. “흔히 접하는 악기인 ‘트레몰로 하모니카’와 달리 크로매틱은 다채로운 선율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비브라토(떨림음)의 울림도 여느 관악기 못지않습니다.”
박종성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모니카에 푹 빠졌다. 전문 연주자의 길로 나섰을 때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도 하모니카 잘 부는데, 직업이 되겠어?’라는 얘기도 들었죠. 그때 낙담은커녕 오기가 생겼어요. 하모니카의 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요.”
그는 2002년 고등학생 때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청소년 트레몰로 부문 금상을 받으며 국내 하모니카 솔리스트로서는 최초의 국제대회 수상자가 됐다. 하모니카 전공으로 음악대(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에 진학한 것도 국내에선 처음이었다. 2009년 ‘하모니카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하모니카대회에서 한국인 최초 트레몰로 솔로부문 1위를 차지했다. “우승하면 물론 행복했죠. 남들이 하지 않는 악기를 연주하는 데서 오는 자부심도 있었죠. 하지만 ‘국내 최초’란 이름표가 주는 무게감도 느꼈어요. 어떤 공연이나 무대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박종성은 전방위적인 음악활동을 펼쳐왔다. 코리안심포니, 프라임필하모닉 등과 협연했고, 2017년 소프라노 조수미의 전국 투어 콘서트에 동행하며 하모니카를 알렸다. 하모니시스트로 이뤄진 ‘서울 하모니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국악 연주자와 협업해 앙상블도 꾸몄다. 2018년부터는 하모니카 교육기관 ‘인투 더 하모니카’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여기에는 그가 하모니카를 배워온 환경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하모니카 전공 교수님이 없었어요. 호흡법부터 연주기법 등을 혼자 배워야 했죠. 연주 실력만 쌓으면 되는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부럽기도 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악보였다. 하모니카를 위한 악보가 없어 편곡과 작곡을 해야 했다. “학생 시절 늘 다른 악기 악보를 하모니카 연주법대로 옮겨야 했어요. 돌이켜보면 스스로 발전하는 데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작곡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요. 더 많은 사람이 하모니카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와의 콘체르토(협주곡)도 선보일 겁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