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의 재판기간이 계속 길어져 민원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민형사뿐 아니라 행정재판에서도 최근 3년간 평균 재판기간이 모두 늘었다. 1심 접수부터 상고심(대법원) 선고까지 재판기간을 합해봤을 때 민사는 2017년 평균 17.1개월에서 2020년 상반기(1~6월) 19.7개월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형사재판은 11개월에서 13.2개월로, 행정재판은 17.5개월에서 20.2개월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법원에 접수된 소송 건수는 매년 감소했다. 법원은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강조해온 ‘충실한 재판’에 따른 여파라고 주장하지만, 민원인들은 판사들이 사건을 제때 처리하지 않는 ‘늑장 재판’으로 피해만 키운다고 호소하고 있다.

재판기간 3년간 꾸준히 증가

점점 늘어지는 재판…민사, 1년7개월 기다려야 결론
13일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원 심급별 재판기간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각급 지방법원에서 진행되는 민사 1심은 2017년 평균 4.8개월이 소요됐지만 2020년 상반기에는 5.6개월이 걸렸다. 3심의 경우 3.8개월에서 6.8개월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구속 여부가 달려 있어 소송관계자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형사공판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는 3.9개월에 그쳤던 형사 1심 재판기간이 2017년 4.2개월로, 올해는 5.1개월까지 늘어났다. 2심은 2017년 4.2개월에서 올해 5.2개월로 늘었다. 행정재판의 경우 올해 기준 1심은 8.1개월, 2심은 7.5개월, 3심은 4.6개월이 걸려 총 20.2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재판을 하면 평균 1년8개월이 넘어야 사건이 해결되는 셈이다.

반면 법원에 접수된 소송 건수 자체는 줄고 있다. 본안 소송 기준으로 2017년에 155만5602건, 2018년 146만2714건, 2019년에는 146만1218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3월 인사제도가 개편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원은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사건처리율도 판사들의 인사고과 항목에서 제외했다. 별일 없는 한 정년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판사들로선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부마다 사건처리율 통계표가 1주일 단위로 돌아 압박감이 컸다”며 “지금은 통계표는커녕 사건을 늦게 처리한다 해도 불이익이 없으니 법원 내부가 안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법원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충실한 재판’을 강조한 것도 한몫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재판에서 증인 신문, 증거 조사 등에 쏟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다 귀기울이는 것만이 충실한 재판은 아니라는 법원 내부 의견도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증인 신청도 다 받아주고 상대방 진술도 다 받아준다고 해서 좋은 재판은 아니다”며 “정의라는 것은 때에 맞춰 실현돼야 그 의미에 부합하는데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윤한홍 의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속한 재판으로 사건 당사자인 국민의 고통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곧 충실한 재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 관계자는 “악성 민원인 사건 등 특이 사례를 빼면 3심 민사재판기간은 평균 4.9개월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3년 전(3.8개월)에 비하면 증가한 수치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