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개봉하는 홍의정 감독의 ‘소리도 없이’(사진)는 독특한 색깔의 범죄영화다. 범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게 아니라 범죄 행각의 뒤처리를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일상을 풍자한다.

영화는 조직폭력배가 누군가를 고문해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인(유아인 분)과 창복(유재명 분)은 고문 현장을 세팅하고 시체를 ‘명당’ 자리를 찾아 묻어준다. 살인 장면은 생략돼 있다. 두 주인공은 범죄 현장을 ‘세탁’하는 일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너무나 열심히 수행한다. 이런 모습이 관객들에게 실소를 자아낸다.

이들은 범죄조직의 하청업자다. 계란장수가 본업이고, 사체 뒤처리는 부업이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유괴된 아이인 초희를 잠시 떠맡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초희와 태인 간에 연민이 싹트면서다. 태인은 말을 못 하는 장애인이지만 초희와 교감하는 능력은 정상인보다 낫다.

등장 인물들이 내뱉는 무수한 말은 가치가 전혀 없다. 깡패가 상대를 위협하거나, 인신매매범이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뿐이다. 진실이라고는 태인의 어린 여동생이 “밥줘”라고 말하는 순간뿐이다. 진심은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전해진다. 초희와 작별하는 순간 태인의 눈빛은 번뜩인다. 초희에 대한 연민으로 태인은 진정한 ‘개안(開眼)’을 경험한다.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 생긴 것이다. 태인의 눈동자에 눈물마저 살짝 맺힌다. 그런 깨달음은 영웅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말과 언어의 부조리함을 전해준다. 나아가 연민과 동정심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이끄는 묘약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