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SNS에 올린 스윙 영상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SNS에 올린 스윙 영상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골프계에서 알아주는 ‘얼리어답터’다. 핑(PING)의 신제품 G425 드라이버와 우드, 하이브리드 세트를 출시 직전 구입해 시험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신제품 드라이버로 스윙하는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어떤 드라이버를 쓰냐?’는 한 골퍼의 질문에 정 부회장은 “타이틀리스트 TSi2”라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얼리어답터부터 ‘실험파’까지

골프장비 및 기술을 깊게 파고드는 골퍼를 ‘시리어스 골퍼’라고 부른다. 흔한 말로 ‘골프덕후’다. 여러 기업을 경영하는 회장들 중에도 이런 덕후가 많다. 시장에도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회장님의 선택’에 공을 들이는 용품업체도 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여러 브랜드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써보고 네티즌과 공개 대화를 즐긴다. 그래서 별명이 ‘공답요정’(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친절히 답변해주는 사람)이다. 골퍼들과의 일상적 소통 와중에 ‘깨알 홍보’를 슬쩍 곁들이기도 한다.

얼마 전엔 두 장에 9800원 하는 ‘노브랜드 골프장갑’을 낀 모습과 스윙영상을 SNS에 올렸는데, “이제부터 브랜드가 됐다”에서부터 “마지막 영상에서 빵 터졌다” “회장님 영업인데 친근하다”는 등의 댓글이 2만8000여 개나 달렸다. 골프마니아 기질을 살려 자사 브랜드 홍보맨을 자처한 것이다. 노브랜드는 신세계그룹 계열 이마트의 자체상표(PB)다.

방탄소년단(BTS)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윤석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도 시리어스 골퍼로 부를 만하다. 그는 최근 타이틀리스트 피팅숍을 찾아 클럽을 맞췄다. ‘피팅 지식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시간이 곧 돈’인 기업인들이 고반발클럽 또는 기성품 세트를 그대로 가져가 사용하는 경우와 다르다. 한 골프용품 회사 관계자는 “골프광으로 알려진 모 회장은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택배 시간까지 단축하려 퀵서비스로 클럽을 가져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완 매일홀딩스 대표는 한 브랜드를 오래 쓰는 스타일이다. 발도(BALDO) 드라이버다. 발도 드라이버는 ‘커스텀(맞춤) 클럽’으로, 기성품이 없고 피팅을 통해서만 제작된다. 발도는 국내에선 낯선 브랜드지만 올해 일본 내 전반기 드라이버 판매량 전체 5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아예 ‘회장님 클럽’이란 별칭이 붙은 제품도 있다. 올블랙 디자인으로 유명한 PXG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연구담당 사장,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등이 이 클럽을 캐디백에 넣고 다닌다. 주요 미디어 기업 총수는 특이하게도 미즈노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체형에 잘 맞는다는 이유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실험가’ 스타일의 대표적 사례는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이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구 회장은 여러 브랜드 제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국내 중소기업 다이아윙스의 ‘싱글 렝스(length) 아이언’인 SL2를 쓴다. 싱글 렝스 아이언은 모든 아이언의 길이가 같은 클럽을 말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챔프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가 쓰면서 사용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업계 “VVIP의 선택은 매출 이상의 가치”

골프 용품사들은 VVIP 고객 공개를 스스로 하지 않지만 애써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사용 후기 마케팅 효과가 더 크다는 게 그동안의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회장이면 효과는 훨씬 크다. PXG는 한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용하는 것이 캐디 등을 통해 자연스레 알려지면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렸다. 한 브랜드 피팅센터 관계자는 “회장님이 쓴다고 하는데, 한 번 쳐보고 싶다며 매장을 들르는 임원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브랜드는 ‘VVIP 전용 공간’을 마련해 운영하기도 한다. 물론 최종 선택은 회장님들의 몫이다. 자신과 맞지 않으면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한 스포츠 광고업계 관계자는 “입소문이 저절로 난다면 그만한 홍보효과도 없다. 브랜드들도 그걸 기대한다”며 “노골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것이라 소비자들의 공감도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