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대만 TMSC가 3분기 미국의 제재에 따라 고객사인 화웨이의 이탈에도 불구, 매출과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초미세 공정 기술력을 앞세워 마진이 높은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업체의 프리미엄급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면서다.

15일 TSMC는 실적 발표를 통해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6% 급증한 약 5조4600억원(1373억1000만 대만달러)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같은 기간 21.6% 증가한 14조2000억원(3564억3000만 대만달러)을 거뒀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42.1%에 달한다.

당초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TSMC가 3분기 시장 전망치를 소폭 웃도는 실적을 거둘 것이라 예측했다. 미국 상무부의 강화된 규제에 따라 TSMC가 더 이상 최대 고객사 중 한 곳이던 화웨이로부터 주문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화웨이의 팹리스 '하이실리콘'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화웨이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인 '기린' 시리즈 등을 만들어왔던 TSMC는 지난 5월부터 화웨이에게 신규 주문을 받지 않았고, 지난달부턴 공급을 아예 중단했다.

다만 이같은 예상을 깨고 TSMC가 역대 최대 실적을 쓸 수 있었던 이유로는 5나노미터(nm) 공정을 비롯한 자사의 초미세공정 기술이 꼽힌다.

애플이 최근 발표한 첫 5세대(5G) 통신 스마트폰 '아이폰12' 시리즈엔 모바일 AP 중 세계 최초로 TSMC가 5나노 공정에서 만든 'A14 바이오닉' 칩셋이 탑재됐다. 업계는 7나노 이하 고사양 제품 출시가 지연되고 있는 인텔 물량까지 수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TSMC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3분기 전체 반도체 생산 매출에서 초미세 공정인 5나노에서 8%를, 7나노에서 35%, 16나노에서 1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16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에서 전체 매출의 61%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것이다.

TSMC는 4분기 실적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TSMC는 4분기 매출이 3분기보다 늘어난 124억~127억달러를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TSMC가 3분기 호실적을 거두면서 TSMC와 미세공정에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로선 조급한 상황이 됐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역시 3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TSMC 53.9%, 삼성전자 17.4%로 관측했다. 점유율 격차가 36.5%포인트로 전 분기(32.7%포인트)보다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6박7일간의 유럽 출장에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방문해 ASML 최고 경영진과 만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공급 계획, 기술 고도화 및 협력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이유도 TSMC를 쫓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ASML이 한정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를 활용하면 웨이퍼에 더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어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초미세공정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와 TSMC로선 EUV 장비 추가 공급이 필수적이다. 현재 EUV 장비를 활용하는 업체는 삼성전자와 TSMC 뿐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는 물론 D램 공정에서도 EUV 장비를 활용하고자 한다.

ASML 매출 보고서에 따르면 EUV 공정을 선제 도입한 삼성전자가 2018년, 후발주자인 TSMC는 지난해 EUV 장비를 많이 확보했다. 올해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TSMC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대수를 확보한 것으로 점쳐진다.

TSMC는 올해 말까지 EUV 노광기 50대를 확보해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ASML로부터 내년 공급받는 EUV 장비는 10여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