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자금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있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으로 계산한다. 빌린 돈과 벌어들인 돈을 비교한 수치다. 낮을 수록 재무건전성이 탄탄하다는 뜻이다. 재무 커버리지 비율은 기업의 차입금 상환 여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여서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의 신용등급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한국신용평가가 주요 그룹의 지난 1년 간 재무 커버리지 비율을 살펴본 결과 CJ그룹이 이 지표를 가장 잘 관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 그룹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악화된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CJ그룹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은 올 상반기 말 기준 3.4배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말(3.6배)에 비해 5.2% 떨어졌다.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작아졌다는 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창출 능력에 비해 갚아야 할 돈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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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차입금(올 상반기 말 기준)이 마이너스(-)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외한 국내 대기업그룹 12곳 가운데 최근 1년간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낮아진 곳은 CJ그룹과 LS그룹뿐이다. LS그룹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말 4.7배에서 올 상반기 말 4.5배로 작아졌다. 3.1% 줄어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CJ그룹의 경우 수년간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투자로 재무부담이 가중됐지만 2018년 이후 재무구조 개선 작업 등을 바탕으로 재무 안전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LS그룹에 대해선 "보수적인 투자 집행 덕분에 잉여현금 창출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대기업 그룹은 최근 1년간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모두 올라갔다. 코로나19 여파로 주력 사업에서 매출이 급감하고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재무 커버리지 비율이 커지긴 했지만 LG그룹(지수 변동 폭 6.7%), 신세계그룹(22.4%), 포스코그룹(24.6%), SK그룹(32.3%), 한화그룹(51.2%), 롯데그룹(69.8%) 등은 비교적 재무 커버리지 비율 관리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효성그룹(108.5%), 두산그룹(142%), GS그룹(183.5%), 현대중공업그룹(190.1%)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말 2.8배에서 올 상반기 말 8.2배로 뛰어 주요 대기업 그룹 가운데 가장 크게 악화됐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정유, 석유화학, 유통, 자동차·부품, 호텔·면세 등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업종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그룹간 실적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14곳 주요 대기업 그룹 중 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업종의 포트폴리오가 전체의 3분의 1 이상인 대기업그룹은 10곳(신세계그룹, 현대차그룹, 두산그룹, 롯데그룹, 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한화그룹, 포스코그룹, SK그룹, 효성그룹)에 이른다.

특히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실적 하락 폭이 컸던 정유·석유화학업과 입국자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호텔·면세업 비중이 큰 대기업 그룹(GS그룹, 현대중공업그룹, 신세계그룹, 롯데그룹)의 실적 악화가 두드러졌다.

증권사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산업 전반의 전망이 어두워진 상황"이라며 "단기간 실적 개선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이 기업들의 재무 커버리지 비율을 더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대기업 그룹의 신용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강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업 포트폴리오에 따라 그룹의 신용도가 갈리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