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미국 투자자를 직접 겨냥한 달러 국채를 발행했다. 발행 규모의 5배에 육박하는 수요가 몰렸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중국 경제 회복에 강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국채에 비해 중국 채권의 수익률이 높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전날 홍콩 시장에서 60억달러(약 6조8800억원) 규모의 달러 채권을 발행했다. 내역을 보면 3년물 12억5000만달러를 비롯해 5년물 22억5000만달러, 10년물 20억달러, 30년물 5억달러다. 채권을 사기 위해 모두 30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몰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같은 규모의 채권 발행에 응찰한 100억달러의 세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채권 발행이 주목을 끈 것은 중국이 미국 투자자를 상대로 국채를 판매하는 게 처음이어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에서 거래가 불가능한 국채를 발행했지만, 이번엔 미국 투자자들이 직접 매입할 수 있는 채권을 함께 내놨다. 이에 따라 30년 만기 국채의 경우 47%가 미국 투자자 손에 들어갔다고 FT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을 딛고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게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지난 4월 이후 생산, 소비, 투자 등 중국의 주요 경제지표는 일제히 개선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제조업 활력을 보여주는 산업생산은 지난 8월 전년 동기 대비 5.6% 늘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소매판매는 같은 기간 0.5% 증가해 올 들어 처음 플러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9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는 각각 작년 동기보다 5.8%, 1.8% 늘었을 것으로 추정돼 증가폭이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인프라 시설, 부동산, 기계장비 투자 동향을 나타내는 고정자산투자도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0.8%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9%로 주요 경제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S&P와 무디스는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각각 A-, A1로 일본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무엘 피셔 도이치뱅크 중국 채권시장팀장은 “중국의 이번 국채 발행이 미국 내 기관투자가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있다”며 IMF의 중국 경제 전망과 중국 증시 상승세, 경제지표 회복 등이 중국 국채 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조건도 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는 해석이다. 이번에 발행된 중국 국채는 3년, 5년, 10년, 30년 만기로 쿠폰(표면)금리는 각각 연 0.40%, 연 0.55%, 연 1.20%, 연 2.25%다. 10년 만기는 중국이 미국보다 0.5%포인트, 30년 만기는 0.8%포인트 높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준금리를 0% 수준까지 내렸지만, 중국은 사실상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3.85%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4년 2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한 뒤 장기간 외화 표시 국채 발행을 중단했다. 이후 2017년 재개해 20억달러어치를 찍었고 2018년 30억달러, 지난해 60억달러로 점차 발행 규모를 늘려왔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