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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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거짓말’에 휘청거리고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불신과 갈등이 전 사회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지난해 ‘거짓말 범죄’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위공직자의 거짓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각종 사회적 갈등이 소통을 통해 해결되지 않고, 사법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사회적 비용이 커지고 있다.

무너지는 신뢰자본…'거짓말 범죄' 판친다
16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사기·무고·위증 등 3대 거짓말 범죄는 총 47만6806건으로 역대 최다였다. 전년(42만2169건)보다 12.9% 증가했고, 2017년(38만2773건)과 비교하면 24.6% 늘었다. 올해 1~8월 3대 거짓말 범죄는 31만6990건이 접수됐다. 무고죄 기소율은 2016년 21.1%에서 지난해 11.6%로 떨어졌다. 근거 없이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피의자가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무고죄를 걸어 상대방을 압박해 고소를 취하시키려는 사례가 많다”며 “이런 행위가 사회 전반의 신뢰 수준을 더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불신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짓말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약하고 갈등이 커지다 보니 거짓말을 하고 신뢰가 무너지는 악순환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견이나 비판을 거짓말로 몰아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좋고 싫음의 잣대로 판단하는 ‘정의의 아노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신뢰 사회’에 대한 경제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10%포인트 상승하면 거래비용이 줄면서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한국은 개인 간 신뢰는 낮아도 제도에 대한 신뢰는 높았는데, 최근엔 이마저도 낮아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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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도 국가도 안 믿는 '不信 한국'…"지도층 거짓말에 도덕 불감증 생겨"

한국이 ‘저신뢰 사회’라는 사실은 해외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9 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은 사회자본 부문에서 조사 대상 167개국 중 142위에 머물렀다. 사회자본은 개인 간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등을 나타낸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사회자본 부문에서 1~3위를 기록한 나라는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였다. 미국은 16위, 중국은 34위였다. 한국의 순위는 멕시코(118위), 브라질(133위) 등 중남미 국가는 물론 짐바브웨(110위), 튀니지(140위)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보다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35개 회원국의 사회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도 한국인은 26.6%만이 ‘그렇다’고 답해 23위에 머물렀다. OECD 평균 36.0%에도 못 미쳤다.

정창우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사용하는 것에 둔감해지고 있다”며 “이런 현상이 고위공직자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횡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추 장관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서 20여 차례 ‘거짓 해명’을 했다는 지적을 야당으로부터 받고 있다. 조 전 장관 역시 지난해 ‘사모펀드 의혹’ 등과 관련해 거짓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정창우 교수는 “일반인이 사회 지도층의 거짓말 논란을 볼 때 ‘저들도 저러는데 우리가 윤리를 지켜야 하는가’란 ‘윤리 회의주의’가 생겨나는 것 같다”며 “신뢰관계가 무너져 개인 간 조정 능력까지 사라지고 있는 현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지은/이인혁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