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집회 자유 vs 국민 생명권' 딜레마 상황"
'신고→금지→법원→신고'…쳇바퀴 도는 보수단체-당국
개천절과 한글날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광장을 둘러싼 방역당국와 보수단체 간 '장군·멍군'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와 경찰이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집회를 금지하면 일부 단체가 법원에 금지 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 또 다른집회 신청을 내는 패턴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될 기세다.

단체들이 집회하려고 내세우는 '헌법상 권리'와 방역당국이 주장하는 '권리의 예외상황'이 계속 충돌하는 형국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개천절·한글날 지나도 `집회 갈등' 계속
개천절·한글날 도심 집회를 금지당한 8·15시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오는 18일과 25일 광화문광장 인근에 1천명 규모의 야외 예배를 신고했다가 또다시 경찰로부터 금지통고를 받았다.

비대위 측은 25일 야외 예배의 금지조치에 맞서 서울행정법원에 금지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개천절·한글날에 이어 세 번째 법원행이다.

매주 광화문광장 등 도심 집회를 신고하는 자유연대도 17일 경복궁역 인근 등 5곳에서 열려던 300명 집회·행진이 금지되자 곧장 금지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보수성향 단체들의 행정소송은 광복절 당시 10건이 무더기로 제기된 이후 일종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원은 앞서 광복절 도심 집회 2건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가 전국에서 참가자가 몰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한 뒤로는 집회에 대해 엄격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도 코로나19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으면 광화문광장 등 도심 집회가 쉽게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신고→금지→법원→신고'…쳇바퀴 도는 보수단체-당국
◇ 보수단체 "정치적 방역"…불법집회 강행도 어려워
지난 12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조정됐으나, 서울시는 집회·시위의 경우 2단계에 준하는 '100명 이상 금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 등 도심 집회 금지구역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미 광복절 집회에서 대규모 감염 확산을 경험했기 때문에 방역당국으로선 도심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수단체들은 이 같은 입장을 '정치적 방역'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연대 관계자는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내려가면서 실내 행사도 완화됐는데 더 안전한 야외 활동을 과도하게 막고 있는 것"이라며 "정치적 방역이고 정치적 판결"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수단체들이 당국의 집회 금지 조치를 무시하고 불법집회 강행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광복절 집회를 강행한 이후 집회발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에서 폭증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수사 대상이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최인식 비대위 사무총장은 "내부에서는 강경한 의견도 있지만 일단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강경 투쟁에 나서면 희생을 각오해야 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고→금지→법원→신고'…쳇바퀴 도는 보수단체-당국
◇ 집회 자유와 생명권 딜레마…"타협선 마련해야"
법 연구자들은 유례없는 감염병 상황에서 헌법상 권리와 방역을 통한 안전 확보 사이에 접점을 찾고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집회를 모두 막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조치로 보인다"며 "집회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구해 기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법원으로서는 딜레마 상황"이라며 "적정 수준으로 집회를 허용하는 게 맞지만, 방역 실패가 또 발생하면 다수의 목숨이 달려있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지만 국민의 생명권·건강권 보호 역시 헌법에 명시된 의무"라며 "주최 측도 헌법상 보장되는 자유가 제한 없는 권리는 아니니 나름대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