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9일 미국 워싱턴DC 인근 타이슨스코너 쇼핑몰. 콜럼버스데이 연휴를 앞둔 대목이었지만 쇼핑몰은 한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쇼핑객의 발길이 뜸해진 것이다. 니먼마커스, 블루밍데일 등 쇼핑몰에 입주한 백화점에선 손님보다 직원 수가 훨씬 많았다.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앤디 씨는 “며칠 전 가게 문을 다시 열었는데, 아직까진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2.지난 13~14일 아마존 프라임데이. CNBC는 아마존 유료회원 대상 빅세일이 열린 이틀간 아마존 입점 업체들이 35억달러(약 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작년 프라임데이 때보다 6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아마존이 자체 판매액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JP모간은 작년보다 42% 늘어난 75억달러(입점 업체+자체 판매액)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K자'로 갈라진 美 경제…3조弗 퍼붓고도 저소득층 더 가난해졌다

일자리·업종별 양극화

코로나19가 미국 경제를 전혀 다른 ‘두 세계’로 갈라놨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고 사람들이 대면접촉을 기피하면서 아마존, 페이스북, 줌(화상회의 앱) 등 비대면 기업과 디지털 서비스 기업은 주가도 오르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항공, 호텔, 여행, 백화점 등은 손님이 끊기면서 불황에 빠져들고 있다.

아마존 주가는 실적 호전에 힘입어 올해 72% 올랐다. 연말연시 수요 급증에 대비해 앞으로 10만 명을 더 채용하기로 하는 등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반면 113년 전통의 고급 백화점 니먼마커스와 118년 역사의 JC페니는 코로나19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항공사, 호텔, 테마파크업계에선 감원 발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고용시장에도 반영됐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1억4170만 명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직전인 2월의 1억5250만 명보다 1080만 명 적었다. 미국은 코로나19 충격이 정점에 달했을 때 모두 2200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현재까지 그 절반 정도만 회복한 것이다. 게다가 일시휴직자의 상당수는 영구휴직자로 전락하고 있다. 4월 200만 명이었던 영구휴직자는 9월 375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실직 충격’은 저소득, 저학력층에 국한된 얘기다. 미 노동부가 25세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졸 이상은 9월 기준 취업자 수가 코로나19 이전보다 0.2% 감소에 그쳤다. 반면 고졸 중퇴 이하는 18.3%나 급감했다. 소득 수준별 취업자 수도 마찬가지다. 리서치업체 에버스코어ISI에 따르면 시급 28달러 초과 근로자는 8월 기준 취업자가 오히려 1.2% 늘었다. 이에 비해 시급 16달러 미만 근로자는 26.9% 줄었다. 미 정부가 3조달러의 부양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졌다.

고소득층 근로자는 관리직 등 재택근무가 가능하거나 대기업 직원이 많아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이에 비해 저소득층은 대면근무가 불가피하고 식당, 숙박시설 등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업종 종사자가 많아 피해가 컸다.

K자 회복 지속 땐 성장잠재력 ‘타격’

부유층과 빈곤층의 양극화는 자산시장에서도 커지고 있다. 올 들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8%, S&P500지수는 7% 상승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때는 S&P500지수가 바닥을 찍은 뒤 회복하는 데 4년가량 걸린 것과 대조적이다. 집값도 지난 8월 전년 동기 대비 11.4%(중간가격 기준) 올랐다.

실물경제 부진에도 주식과 집을 가진 자산계층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됐지만 주식이나 집이 없는 계층은 자산을 불릴 기회조차 없었다. 미국인 중 상위 1%가 전체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상위 10%의 보유 비중은 87%에 달한다.

‘K자 회복’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1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증시 호황을 내세워 “미국 경제가 V자 회복 중”이라고 하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는 서민층 타격을 지적하며 “K자 회복”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K자 회복이 장기화하면 경제 성장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 노동부 수석경제학자 출신인 하이디 시어홀츠는 “코로나로 수백만 명의 실직자가 생기면 경제에서 소비 수요가 줄어들고 그 결과 기업의 제품 판매가 감소해 2차 해고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