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화가 많이 나 있다"…롯데 연말 '독한 인사' 나오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유통 명가' 롯데, '순혈주의' 깨나
쇼핑HQ 기획전략본부장에 사상 첫 외부 출신 발탁
'72년생, 컨설팅 회사 출신' 정경운 상무
구조조정, 신사업 개발, 이커머스 방향 정립 맡아
강희태 부회장 "전문적이고 새로운 발상 요구되는 시기"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그룹 부회장)는 최근 뜻밖의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19일부로 롯데쇼핑 헤드쿼터(HQ, 본부)의 기획전략본부장(상무)에 ‘70년대생, 외국계 컨설팅 회사 출신’ 임원을 선임했다. 백화점, 마트, 슈퍼, 이커머스, 롭스 등 5개 사업부를 총괄하는 본부의 ‘두뇌’ 격인 자리에 외부 인사를 기용하기는 롯데쇼핑 사사(社史)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상 중인 연말 ‘독한 인사’의 서막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정경운 신임 쇼핑HQ 기획전략본부장이 서울 소공동 사무실에 첫 출근한 날은 지난 12일이다. 정식 발령일에 앞서 HQ 소속 본부와 HQ가 관할하는 5개 사업부의 임원들과 미리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집무실이 있는 강 부회장이 소공동으로 넘어 와 직접 상견례 자리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강 부회장은 HQ 직원들에게 일일히 이메일을 보내 신임 본부장 선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HQ의 주요 업무에는 쇼핑사업 구조조정, 신사업 개발, E커머스(전자상거래) 방향정립 등이 있다”며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좀 더 전문적이고 새로운 발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외부 출신 임원이 안착할 수 있도록 강 부회장이 직접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룹 내부에선 이번 인사에 대해 변화의 바람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올 초 신설된 쇼핑HQ의 첫 기획전략본부장은 백화점에서 오래 근무한 롯데 공채 출신”이라며 “역대 백화점 기획전략본부장들도 이원우 전 롯데물산 총괄대표 등 100% 롯데 공채 출신이 맡아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 회장이 연말 그룹 임원 인사와 관련해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약 4년 간 사법 리스크 등에 시달리면서 사실상 경영 공백이 발생했는데 이 때 디지털로의 과감한 전환을 놓친 것에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신 회장은 올 8월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의 용퇴를 수용하는 등 지주 임원을 대폭 축소하면서 ‘옥상옥’이었던 지주의 간섭을 대폭 축소시켰다. 일본에서 약 두 달 간의 체류를 마치고 이달 중 귀국하면 연말 인사를 통해 각 유통,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등 4개 BU(사업부)별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진용을 짤 것이란 게 그룹 내부 관측이다.

강 부회장이 정 상무를 발탁한 건 그룹의 핵심인 쇼핑 부문부터 대수술에 나설 것이란 신호탄이다. 경쟁사인 신세계그룹만 해도 지난해 10월 농림수산식품부와 베인앤컴퍼니를 거친 강희석 대표를 이마트 수장에 앉히고, 지난 12일 정기 인사 땐 강 대표에게 SSG닷컴 대표까지 겸직시켰다.

보스톤컨설팅그룹 출신인 정 상무는 2017년부터 동아ST의 경영기획실장 등을 지내며 회사 경영을 정상화한 점이 발탁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개발 투자를 효율화하고, 비핵심 사업을 분사시키며 2016년 148억원이던 동아ST 영업이익을 지난해 570억원으로 개선시켰다. 신규 사업 투자에서도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강 부회장은 HQ 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정 상무에 대해 “유통 경험은 없지만 전략적인 기업 경영을 많이 한 분으로 우리 조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