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한 허용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제한 허용 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비상장사의 복수의결권과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경제 활성화 정책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선진국보다 못한 수준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균형 있게 추진”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혁신 벤처기업 육성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며 “공정경제와 혁신성장을 균형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수의결권 제도는 벤처기업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도록 자금 조달과 창업주 경영권을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도입 방침을 밝혔다. 복수의결권은 비상장사 창업주에게 주식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규모 지분 투자를 받더라도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다.

김 원내대표는 “미국과 영국 등 창업과 벤처 투자가 활발한 국가에서는 복수의결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며 “복수의결권 주식을 상속·양도하면 보통주로 전환하는 등 부작용 방지를 위한 보완장치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CVC와 관련해서는 “벤처 투자를 확대하고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동반 성장을 촉진하는 방안”이라며 “벤처기업은 성장 투자금과 기술·경영 노하우를 제공받고, 대기업은 벤처의 혁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협력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반쪽짜리 복수의결권·CVC

김 원내대표가 이날 복수의결권과 CVC 도입을 강조한 것은 여당이 기업규제 3법 추진에 따른 재계 반발을 의식한 ‘당근’을 제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공정경제(기업규제) 3법’을 통해 공정한 시장을 만들고, 복수의결권과 CVC 제도로 혁신벤처를 활성화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방안을 보면 선진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제도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은 회사 상장 후 3년 동안만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반면 미국, 중국 등에서는 상장 여부에 따른 제한 조항을 두지 않고 있다. CVC 역시 당초 예상보다 제한적인 허용안이 마련됐다. 일반 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 자회사 형태로 CVC 설립이 가능하고, CVC 업무 범위와 외부 자금 조달 비율, 투자처 등도 제한된다. 해외에서는 CVC 설립과 펀드 조성 방식에 규제가 없다.

이런 가운데 기업규제 3법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히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3% 의결권 제한(3%룰)’을 두고도 여당 내부에서 ‘원안 고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3%룰을 유지하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다만 3%룰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데다 기술 유출 등에 대한 재계 우려가 반영돼 수정될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野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해야”

야당은 주요 선진국 수준의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의한 경영권 상실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다양하고 강력한 제도를 도입해 경영권 경쟁의 공정성을 도모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적대적 M&A의 다양한 공격에 상응하는 방어 수단이 거의 없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비용이 훨씬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추 의원은 이를 위해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부가 제출한 상법 개정안과 함께 논의될 전망이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