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우리가 중국 앞에 무릎을 꿇으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10월 17일자 커버스토리(‘고문당하는 위구르인들’)는 충격적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신장자치구 지역 위구르족 ‘와해프로젝트’를 얼마나 폭압적이고 잔혹한 방법으로 자행하고 있는지를 고발했다. 공공장소에서 기도하거나 구레나룻을 길렀다는 이유로 ‘극단주의자’ 낙인을 찍어 수용소에 가두고는 “코란(이슬람 경전) 대신 시진핑 사상을 믿으라”며 인간개조작업을 벌인다. ‘불온분자’ 부모로부터 떼어내 보육원에 입소시킨 수십만 명의 어린이에게는 수업시간 위구르어 사용이 처벌 대상이다. 여성들에게는 불임수술을 받거나 한족 남자와 결혼하면 집안남자들을 잡아가지 않겠다는 식으로 회유해 1200만여 명 위구르족 씨를 말리려는 공작까지 벌이고 있다.

보도한 내용들이 “설마” 싶을 정도로 황당한데, 이코노미스트지는 “인공위성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중국 정부 공식 문건, 생존자 증언 등을 샅샅이 훑어 집대성한 보도”라고 했다. “위구르인들을 감옥이 아니라 직업훈련소에 입소시켜 지역에 안정을 심고 경제성장 혜택을 주고 있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을 조목조목 폭로하며 “반인륜 범죄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집단 보이콧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중국 정부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얘기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이 위구르와 비슷한 티베트자치구 억압 사례를 보도하자 중국 외교부가 거친 문구를 담은 반박성명서를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참과 거짓을 혼동하지 말고 사실을 존중하라. 허위주장에 바보처럼 놀아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참’과 ‘거짓’은 자유세계와 기준이 다르다.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블라디미르 레닌, ‘공산주의 신조’)고 믿는 그들에게 개인 자유와 인권 따위 타령은 그 자체가 ‘거짓’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입수한 중국 정부 내부 문건은 그들이 말하는 ‘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위구르 티베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인간개조는 국민 간 조화와 후진적 사고에 갇힌 인간들을 일깨우기 위해 불가피하다.”

이런 중국 정부 앞에서는 ‘힘없는 게 죄’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약점을 드러내면 ‘교화(敎化)’ 대상이요 먹잇감이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정부가 이런 ‘완력질’을 국외로까지 확산하고 있는 현실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 필리핀 등 인근 국가는 물론 영국 호주 독일 등 서방 강국들에 대해서까지 ‘길들이기’ 공세를 무차별적으로 벌이고 있다. 자원 수출 등 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호주 정부가 ‘우한폐렴’ 따위 불경스러운 말을 늘어놓자 무역보복 ‘융단폭격’으로 혼쭐을 낸 것은 신호탄에 불과했다.

지난달에는 유럽 맏형국가인 독일을 ‘시범케이스’로 다뤘다. 시진핑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상 간 전화통화를 이틀 앞두고 독일산 돼지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독일산 돼지 한 마리의 아프리카열병 감염을 핑계 댔지만 “미국의 중국 고립정책에 동참하지 말고, 중국 내 인권 문제 공격도 멈추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석했다. 이 신문은 이런 행태를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준다”는 중국 속담에 빗댔다.

이런 중국에 ‘알아서 기는’ 것은 쳐놓은 덫을 제 발로 밟는 것과 다름없다. 머리를 숙일수록 더 약점을 잡히는 게 ‘중국 문제’의 핵심임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웅변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나라를 방문해 “중국은 큰 산봉우리이고 우리는 작은 나라”라고 말한 게 부적절했던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지도부에서는 여전히 중국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언행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월 캘리포니아의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중국 바로잡기’에 결연하게 나설 것을 다짐하면서 “지금 우리가 중국 앞에 무릎을 꿇으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중국 공산당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민국은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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