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10조3104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인수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 글로벌 2위 업체로 발돋움한다. 사진은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10조3104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20일 발표했다. 인수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 글로벌 2위 업체로 발돋움한다. 사진은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연합뉴스
‘30%와 11%.’

SK하이닉스의 고민을 말해주는 숫자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 점유율은 30.1%(올 2분기 기준)로 삼성전자와 함께 확실한 ‘양강 구도’를 구축했다. 반면 점유율 11.4%로 세계 5위권에 머무는 낸드플래시(낸드)는 회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이다. 시장 변동성이 큰 D램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과 언제든지 낸드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SK하이닉스가 10조원이란 ‘거금’을 인텔에 내주고 낸드 사업 인수를 결단한 배경이다.

낸드플래시 점유율 2위로 도약

SK하이닉스가 20일 밝힌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 인수 대상에는 낸드·SSD(데이터저장장치) 사업과 특허 등 설계 자산, 인력, 중국 다롄 공장 등이 모두 포함됐다. 회사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낸드 시장에서의 열세를 뒤집기 위한 핵심 자산들이 모두 들어 있다. 게다가 SK하이닉스 낸드 사업은 지난 2분기까지 일곱 분기 연속 적자에 빠진 상태여서 반전의 계기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반도체 시장에서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SSD 사업 역시 취약한 시장 영향력을 극복할 카드가 필요했다. SSD는 낸드플래시를 여러 개 이어 붙여 제조하는 저장장치다. 특히 ‘기업용 SSD’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가동하는 데이터센터 서버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세계 시장은 지난해 105억달러(약 12조원)에서 2024년 307억달러(약 3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의 기업용 SSD 점유율은 7.1%(2분기 기준)로 삼성전자(34.1%)에 한참 못 미친다. 낸드를 SSD로 개발하는 ‘솔루션’ 기술력이 약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반도체 전문가는 “삼성전자 등 1~2위 업체들이 치킨게임을 시작한다면 SK하이닉스는 벼랑 끝으로 몰릴 정도로 취약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D램 의존도가 높은 SK하이닉스의 약점도 해소할 전망이다. 지난해 매출 기준 D램과 낸드 비중은 7 대 3 수준으로 추정된다. SK 관계자는 “이번 인수로 D램 사업의 리스크를 보완하고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 낸드 인수로 일거에 고민 해결

인텔의 낸드·SSD 사업 인수는 SK하이닉스의 이 같은 고민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꼽혔다. 인텔의 2분기 낸드 점유율은 11.5%, SK하이닉스와 합치면 22.9%로 단숨에 2위로 뛰어오른다.

기업용 SSD에서의 인텔의 위상은 더욱 강력하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개발 과정에서 쌓은 솔루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용 SSD 시장 세계 2위(29.6%)에 올라 있다. SK하이닉스(7.1%)와 합치면 삼성전자(34.1%)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선다.

SSD부터 인수

이번 인수 계약은 두 단계로 나눠 이뤄진다. SK하이닉스는 우선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을 받은 뒤 70억달러를 지급하고 SSD 관련 사업과 인력, 특허 등을 먼저 인수한다. 나머지 낸드와 낸드 웨이퍼 사업은 2025년께 20억달러를 주고 인수할 계획이다. 낸드 사업 인수가 2025년께 이뤄지는 건 인텔이 낸드 사업에서 협력했던 미국 마이크론과의 계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달하는 인수 금액에 대해 시장에선 ‘비싸게 주고 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인텔의 낸드·SSD 사업 총 자산은 7조8000억원에 달하지만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누적 적자가 2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이익률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러나 ‘잘한 계약’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이번 계약의 외부 평가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인텔 사업부의 가치는 9조5944억원에서 11조1123억원의 범위에 있다”며 “인수금액에 대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분석했다. 인수대금을 나눠 지급하기 때문에 자금 부담도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경제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함께 D램에 이어 낸드 부문에서도 나란히 글로벌 1, 2위를 차지하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석좌교수는 “SK하이닉스로선 인텔의 솔루션 기술을 확보할 절호의 찬스를 잡은 것”이라며 “낸드 시장에서 2위에 오르며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황정수/송형석/이상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