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거기서 왜 나와?…번지수 틀린 '택배 과로사' 국감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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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얼마 전 긴급 회의를 열고 26일 열리는 ‘택배 과로사’ 국감에 전자상거래(e커머스) 업체인 쿠팡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배경은 둘 중 하나다. ‘뭣이 중요한 지’도 모르면서 주목도를 높이려고 벌인 ‘쇼’이거나, 쿠팡의 사례를 들어 기존 택배사들에 경고를 하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다. 그간 국감의 행태를 감안하면 개연성이 매우 낮긴 하지만, 후자(後者)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건 쿠팡이 택배사들과는 정반대의 고용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은 ‘쿠친’이라 부르는 약 1만명의 배송 근로자를 직고용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기존 택배회사들은 대리점을 통해 배송 기사들과 거래한다. 기사들의 법적 지위는 개인 사업자다. ‘쿠친’은 국민연금에 의무 가입돼 있는 직장인이다. 쿠팡의 배송 직원들은 1주일에 5일만 근무(주말은 교대)하고, 하루 근로 시간도 5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배송 중 근무 시간이 초과되면 시간이 남아 있는 동료에게 넘기고 퇴근해야한다.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차에서 쪽잠을 자야하는 일은 쿠팡에선 벌어지기 어렵다. 택배연대노조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배송 업무와 박스 분류 및 상차 작업의 분리역시 쿠팡에선 회사 설립 때부터 시행 중이다. 배송 작업자의 고용 형태 측면에서 쿠팡은 기존 택배사들에 ‘눈엣 가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쿠친’이 택배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만에 하나 환노위 의원들이 ‘깊은 뜻’으로 쿠팡 물류부문 책임자(전무)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해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기는 매한가지다. 쿠팡과 택배회사들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우선, 쿠팡은 택배회사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전자상거래 및 통신중개사업자다. 택배를 포함해 물류 회사는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업체만 해당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류는 국가 기간망이라서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은 택배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수출 화물을 육·해·공으로 날라주는 물류 전문 기업이다.
개념적으로도 물류 기업은 화주(貨主)를 대신해 운송을 대신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예컨데 네이버 쇼핑이나 11번가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배송은 CJ대한통운이나 한진택배가 해주는 식이다. 이에 비해 쿠팡은 자기 물건을 소비자 집앞까지 배송해 줄 뿐이다. 이마트가 장보기를 마친 소비자를 위해 가까운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것과 개념은 똑같다. 쿠팡은 277개의 물류센터를 전국에 세워 ‘로켓 배송’이라는 남들이 하지 않던 서비스를 해주고 있을 뿐, 물류 회사가 아니다.
쿠팡과 다른 택배사들의 배송 기사와 관련한 고용 형태가 다른 것은 누가 선하고, 악하고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쿠팡 역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쿠팡은 경쟁사와의 차별 포인트로 ‘빠른 배송’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조(兆) 단위의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만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쿠팡에선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쿠팡 1t 트럭 어디에 물건이 실릴 지가 정해진다. 물론, 이 과정은 사람이 아니라 AI(인공지능)가 한다. 쿠팡이 배송 기사들을 직고용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소비자의 집앞까지 어떤 동선으로 가는 지, 물건을 전달할 때 고객의 반응은 어땠는 지 등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쿠팡은 e커머스 업체이기 이전에 AI·빅데이터 전문 기업이다. 쿠팡과 CJ대한통운 등의 택배회사는 업의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게 요지다.
택배 시스템이 왜 본사-대리점-배송 기사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가 됐는 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택배는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고, 상품 구매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뤄졌다. 택배사들도 배송기사들을 직고용했다. 기사 1명이 서울시 2개 구를 ‘커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와 닷컴 전성시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택배가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엔 G마켓이란 온라인 장터를 표방한 전자상거래 업체가 등장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40,50대에게 택배 기사는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했다.
트럭 한 대와 운전 면허증, 그리고 체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이들은 물류회사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자신들이 택배 기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구역에 배정된 물량이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나자 각 지역별로 ‘작은 사장’들이 생겨났다. 개인 사업자 간의 거래이다보니 대리점과 배송기사들이 맺는 계약은 사실상 법의 테두리 밖에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택배사들도 대리점과만 거래하는 게 편했다. 골치 아픈 노무 관리를 안해도 되니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 질서’를 깨트릴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회가 쿠팡을 증인으로 채택한 건 ‘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포장용 빈박스를 운반하던 근로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와 한데 엮으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에서 발생한 일은 산업재해일 가능성은 있지만 택배 산업과는 연관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산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과 제휴를 넘어 지분 교환까지 하기로 결정할 정도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문제는 갑작스러운 시장 환경이 낳은 부작용이자 비극이다. 앞으로도 ‘언택트 소비’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정부와 택배사들이 나서 기존의 생태계를 근본에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몇몇이 보여주기식으로 국감에서 호통을 친다고 바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26일 국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쿠팡은 ‘쿠친’이라 부르는 약 1만명의 배송 근로자를 직고용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 기존 택배회사들은 대리점을 통해 배송 기사들과 거래한다. 기사들의 법적 지위는 개인 사업자다. ‘쿠친’은 국민연금에 의무 가입돼 있는 직장인이다. 쿠팡의 배송 직원들은 1주일에 5일만 근무(주말은 교대)하고, 하루 근로 시간도 52시간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배송 중 근무 시간이 초과되면 시간이 남아 있는 동료에게 넘기고 퇴근해야한다.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차에서 쪽잠을 자야하는 일은 쿠팡에선 벌어지기 어렵다. 택배연대노조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배송 업무와 박스 분류 및 상차 작업의 분리역시 쿠팡에선 회사 설립 때부터 시행 중이다. 배송 작업자의 고용 형태 측면에서 쿠팡은 기존 택배사들에 ‘눈엣 가시’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쿠친’이 택배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만에 하나 환노위 의원들이 ‘깊은 뜻’으로 쿠팡 물류부문 책임자(전무)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해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기는 매한가지다. 쿠팡과 택배회사들을 비교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우선, 쿠팡은 택배회사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전자상거래 및 통신중개사업자다. 택배를 포함해 물류 회사는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업체만 해당 행위를 할 수 있다. 물류는 국가 기간망이라서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등은 택배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의 수출 화물을 육·해·공으로 날라주는 물류 전문 기업이다.
개념적으로도 물류 기업은 화주(貨主)를 대신해 운송을 대신해주는 업체를 말한다. 예컨데 네이버 쇼핑이나 11번가에서 물건을 구매하면 배송은 CJ대한통운이나 한진택배가 해주는 식이다. 이에 비해 쿠팡은 자기 물건을 소비자 집앞까지 배송해 줄 뿐이다. 이마트가 장보기를 마친 소비자를 위해 가까운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것과 개념은 똑같다. 쿠팡은 277개의 물류센터를 전국에 세워 ‘로켓 배송’이라는 남들이 하지 않던 서비스를 해주고 있을 뿐, 물류 회사가 아니다.
쿠팡과 다른 택배사들의 배송 기사와 관련한 고용 형태가 다른 것은 누가 선하고, 악하고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쿠팡 역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쿠팡은 경쟁사와의 차별 포인트로 ‘빠른 배송’을 선택했다. 이를 위해 조(兆) 단위의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만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쿠팡에선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쿠팡 1t 트럭 어디에 물건이 실릴 지가 정해진다. 물론, 이 과정은 사람이 아니라 AI(인공지능)가 한다. 쿠팡이 배송 기사들을 직고용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소비자의 집앞까지 어떤 동선으로 가는 지, 물건을 전달할 때 고객의 반응은 어땠는 지 등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쿠팡은 e커머스 업체이기 이전에 AI·빅데이터 전문 기업이다. 쿠팡과 CJ대한통운 등의 택배회사는 업의 본질 자체가 다르다는 게 요지다.
택배 시스템이 왜 본사-대리점-배송 기사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가 됐는 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택배는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고, 상품 구매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뤄졌다. 택배사들도 배송기사들을 직고용했다. 기사 1명이 서울시 2개 구를 ‘커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와 닷컴 전성시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택배가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엔 G마켓이란 온라인 장터를 표방한 전자상거래 업체가 등장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40,50대에게 택배 기사는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했다.
트럭 한 대와 운전 면허증, 그리고 체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이들은 물류회사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자신들이 택배 기사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구역에 배정된 물량이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 나자 각 지역별로 ‘작은 사장’들이 생겨났다. 개인 사업자 간의 거래이다보니 대리점과 배송기사들이 맺는 계약은 사실상 법의 테두리 밖에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택배사들도 대리점과만 거래하는 게 편했다. 골치 아픈 노무 관리를 안해도 되니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 질서’를 깨트릴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회가 쿠팡을 증인으로 채택한 건 ‘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포장용 빈박스를 운반하던 근로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와 한데 엮으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쿠팡에서 발생한 일은 산업재해일 가능성은 있지만 택배 산업과는 연관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택배 산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과 제휴를 넘어 지분 교환까지 하기로 결정할 정도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문제는 갑작스러운 시장 환경이 낳은 부작용이자 비극이다. 앞으로도 ‘언택트 소비’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정부와 택배사들이 나서 기존의 생태계를 근본에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몇몇이 보여주기식으로 국감에서 호통을 친다고 바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26일 국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