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의도 2배"…전국에 숨은 '일본 땅' 180만평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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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전 일본인·기관 소유였던 재산은 국가가 환수해야 하지만, 아직도 국유화를 못한 땅이 180만평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다. 나라를 되찾은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제 '재산 청산'은 상당 부분 미완으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일본 재산 환수를 하루빨리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전담 기관인 조달청의 인력 확충은 물론 민간 전문가 등까지 포함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재산도 있다. 광복회와 김주영 의원실이 자체 조사한 결과 339만5000㎡ 규모(150필지) 일본인 재산이 국유화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이 결성한 보훈단체다.
총 594만6000㎡(179만9000평) 규모의 일본인 재산을 국유화하지 못한 것이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축구 경기장(2000평)으로 따지면 약 900개 경기장과 맞먹는다. 필지로는 총 3114곳이며, 이들 재산의 가치는 공시지가 기준 2181억원에 이른다. 현재 조달청이 환수 대상 여부를 조사 중인 것도 1180여필지가 있어 미환수 일본 재산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미환수 일본 재산은 크게 귀속재산과 은닉재산으로 나뉜다. 귀속재산은 일본인 명의로 남아있는 땅을 누군가 무단 점유하거나 무주공산으로 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은닉재산은 일본인 명의 땅을 불법적으로 자기 명의로 바꿔버린 것이다.
서울 종묘와 창경궁 사이 보행로에도 '전전승(前田昇)'이란 일본인의 땅이 있다. 전전승의 실체는 1920년 조선 헌병대 사령관이었던 마에다 노보루. 이 땅은 아직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다. 면적은 약 2평으로 작지만 조선 왕조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지 인근이란 점에서 하루빨리 일제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인 땅은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 아래 광희동사거리에도 있다. 일제의 조선인 통제기구 준비위원이었던 하촌명(河村明), 일본명 카와무라 아키라가 살던 집터다.
광복회가 찾아낸 일본 재산 대부분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었다. 공시지가 10억원이 넘는 비싼 땅이 대부분이다. 광복회 관계자는 "화성시는 6·25 전쟁 때 시청의 공적 장부가 불에 타 없어졌다"며 "이를 틈타 일본인 재산을 부당하게 소유권 이전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체계적인 일본 재산 환수가 이뤄지지 못했다. 환수 담당 기관이 관세청→국세청→기획재정부→한국자산관리공사 등으로 계속 왔다갔다 했다. 애초에 일본 재산 환수에 전문성을 갖춘 기관도 아닌데 업무가 수시로 이관되니 환수가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2006년 일본 재산 환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역사학자, 일본학자, 한문학자, 변호사, 광복회 등 전문가가 100명 넘게 참여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도 2010년 해산됐다. 이후 2012년 조달청이 일본 재산 환수 전담기관이 됐지만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인수인계 안되다가 2018년에야 전달되는 일도 있었다.
일본 재산 환수 업무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80~100년 전에 수기로 쓰여진 토지조사부, 조선총독부 자료, 법원의 옛 등기 자료 등을 독해·분석하고 수십년 세월 동안의 지적 변형과 소유권 이전 등을 역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속재산은 행정 절차만으로 환수가 가능하지만 은닉재산은 '불법 소유권 이전'을 증명해야 해 소송이 필수다. 법원 판례 해석 등 법적 전문성도 요구된다.
그런데 조달청의 일본 재산 환수 담당 인력은 10여명에 그친다. 그나마 4~5년 이상 업무를 전담하는 2명의 전문관을 빼면 모두 순환 보직이어서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다. 환수 소송을 전담하는 정부법무공단의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6년 이후 환수 소송 승소율은 71.2%에 그친다. 건당 소송비용이 약 4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패소로 날린 소송 비용만 1억원이 넘는다.
정부 내 협업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수 업무를 위해선 조달청이 각 부처가 갖고 있는 공적 장부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인데, 일부 부처가 자료 제공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조달청은 2012년부터 법원행정처에 재산 등기 자료 제공을 요구했으나 2015년에야 받을 수 있었다.
광복회 관계자는 "조달청이 8년간 전문성을 쌓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며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 TF를 꾸리거나 친일재산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되살리는 등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영 의원은 "광복 75주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일제 재산 청산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조달청 전문 인력 확충은 물론 범부처 TF를 꾸려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하고 소송 전문성을 대폭 끌어올리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일본 재산 환수를 하루빨리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전담 기관인 조달청의 인력 확충은 물론 민간 전문가 등까지 포함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복 75주년인데 아직도 전국 곳곳에 일본 땅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받은 '일본인 재산 환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유화를 진행 중인 일본 재산은 총 2964필지, 면적으로는 255만1000㎡에 이르렀다. 조달청이 일본인 재산 의심 사례를 조사해 '국가로 귀속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결론 내린 땅이다.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재산도 있다. 광복회와 김주영 의원실이 자체 조사한 결과 339만5000㎡ 규모(150필지) 일본인 재산이 국유화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 및 그 후손이 결성한 보훈단체다.
총 594만6000㎡(179만9000평) 규모의 일본인 재산을 국유화하지 못한 것이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축구 경기장(2000평)으로 따지면 약 900개 경기장과 맞먹는다. 필지로는 총 3114곳이며, 이들 재산의 가치는 공시지가 기준 2181억원에 이른다. 현재 조달청이 환수 대상 여부를 조사 중인 것도 1180여필지가 있어 미환수 일본 재산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미환수 일본 재산은 크게 귀속재산과 은닉재산으로 나뉜다. 귀속재산은 일본인 명의로 남아있는 땅을 누군가 무단 점유하거나 무주공산으로 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은닉재산은 일본인 명의 땅을 불법적으로 자기 명의로 바꿔버린 것이다.
◆조선왕조 '상징' 종묘 근처에도 일본 땅
조달청 관계자는 "웬만한 재산은 이미 국유화됐고 지금 미환수로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지방의 자투리 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무심코 지나갔던 곳이 알고보니 '일본인 땅이더라' 하는 것도 아직 적지 않다.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원향교 바로 옆엔 30평 남짓한 기와집이 하나 있는데, 이 땅 주인은 '향산홍(香山弘)'이란 일본인이었다. 일본 이름으로 가야마 히로시다. 이 땅은 올 8월에야 국유화됐다.서울 종묘와 창경궁 사이 보행로에도 '전전승(前田昇)'이란 일본인의 땅이 있다. 전전승의 실체는 1920년 조선 헌병대 사령관이었던 마에다 노보루. 이 땅은 아직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다. 면적은 약 2평으로 작지만 조선 왕조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지 인근이란 점에서 하루빨리 일제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인 땅은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 아래 광희동사거리에도 있다. 일제의 조선인 통제기구 준비위원이었던 하촌명(河村明), 일본명 카와무라 아키라가 살던 집터다.
광복회가 찾아낸 일본 재산 대부분은 경기도 화성시에 있었다. 공시지가 10억원이 넘는 비싼 땅이 대부분이다. 광복회 관계자는 "화성시는 6·25 전쟁 때 시청의 공적 장부가 불에 타 없어졌다"며 "이를 틈타 일본인 재산을 부당하게 소유권 이전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1948년 모두 환수했어야 했는데
일제 시대에 일본인·법인·기관 소유였던 재산은 1948년 모두 국고로 환수하기로 결정됐다. 그해 미 군정과 체결한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에 따른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이때 일제히 국유화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 때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세웠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1년도 안돼 해체되는 등 일제의 인적·재산 청산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이후에도 체계적인 일본 재산 환수가 이뤄지지 못했다. 환수 담당 기관이 관세청→국세청→기획재정부→한국자산관리공사 등으로 계속 왔다갔다 했다. 애초에 일본 재산 환수에 전문성을 갖춘 기관도 아닌데 업무가 수시로 이관되니 환수가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그나마 2006년 일본 재산 환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구성됐다. 역사학자, 일본학자, 한문학자, 변호사, 광복회 등 전문가가 100명 넘게 참여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도 2010년 해산됐다. 이후 2012년 조달청이 일본 재산 환수 전담기관이 됐지만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인수인계 안되다가 2018년에야 전달되는 일도 있었다.
◆"일본 재산 환수 전담 TF 꾸려야"
조달청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재산 환수 전담기관을 유지하며 연속성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다. 조달청은 2012년 6월~올 9월까지 총 4997필지, 388만8000㎡, 1209억원 상당의 일본 재산을 국유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지금도 문제는 있다.일본 재산 환수 업무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80~100년 전에 수기로 쓰여진 토지조사부, 조선총독부 자료, 법원의 옛 등기 자료 등을 독해·분석하고 수십년 세월 동안의 지적 변형과 소유권 이전 등을 역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속재산은 행정 절차만으로 환수가 가능하지만 은닉재산은 '불법 소유권 이전'을 증명해야 해 소송이 필수다. 법원 판례 해석 등 법적 전문성도 요구된다.
그런데 조달청의 일본 재산 환수 담당 인력은 10여명에 그친다. 그나마 4~5년 이상 업무를 전담하는 2명의 전문관을 빼면 모두 순환 보직이어서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다. 환수 소송을 전담하는 정부법무공단의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6년 이후 환수 소송 승소율은 71.2%에 그친다. 건당 소송비용이 약 4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패소로 날린 소송 비용만 1억원이 넘는다.
정부 내 협업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수 업무를 위해선 조달청이 각 부처가 갖고 있는 공적 장부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인데, 일부 부처가 자료 제공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조달청은 2012년부터 법원행정처에 재산 등기 자료 제공을 요구했으나 2015년에야 받을 수 있었다.
광복회 관계자는 "조달청이 8년간 전문성을 쌓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며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 TF를 꾸리거나 친일재산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되살리는 등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영 의원은 "광복 75주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일제 재산 청산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조달청 전문 인력 확충은 물론 범부처 TF를 꾸려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하고 소송 전문성을 대폭 끌어올리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