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에 호의 베풀다 살해당한 68세 노인 … 法 "징역 18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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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용돈과 잠자리 등을 제공하며 호의를 베푼 사람을 살인한 노숙인에게 법원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8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23일 밝혔다.
노숙인 A씨(39)는 부산의 한 건물 옥탑방에서 지내며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던 B씨(68)를 알게 됐다. B씨는 평소에 노숙인들에게 용돈을 주고 머물 곳을 내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A씨도 2015년 말부터 B씨에게서 매일 용돈을 1만원씩 받고 B씨의 거처인 옥탑방에서 잠을 자는 등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A씨는 B씨가 다른 노숙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호의를 베푸는 데 불만을 갖게 됐다. B씨가 하고 있는 건물 관리 업무를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B씨가 거절한 것을 두고서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2019년 9월 A씨가 B씨의 옥탑방을 찾아가 "좀 자다가 가겠다"고 청했지만 B씨가 거절하자 A씨는 B씨의 얼굴과 복부 등을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수차례 폭행하고 줄로 목을 조르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며 "범행의 내용과 수법 등에 비추어 그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판결했다. A씨가 2013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흉기등상해)죄 등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도 참작했다.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의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오히려 A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B씨는 68세의 노령으로서 늦은 밤에 39세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피고인 B씨의 느닷없는 공격을 받고 이렇다 할 저항 한 번 해 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며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매우 무자비하고 흉포하게 살해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대법 재판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정한 양형 기준상 가중 영역이 적용될 사안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범행은 건장한 체구를 가진 피고인이 노령의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며 "무자비성이나 흉포성에 비춰 구체적 양형 판단에 고려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봤다. A씨가 B씨의 유족들에게 사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유족들이 B씨의 엄벌을 탄원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에 재판부는 "원심의 양형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