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안주함에 대하여
성공을 만끽할 때가 있다. 어렵사리 마감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거나, 지난한 협상 끝에 계약을 성사시키는 경우 말이다. 이런 성공을 만끽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성공에 너무 오랫동안 만족하고 있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자신과 성취에 대해 만족하는 바로 그 순간,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끼어든다. 안일함과 타성,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태도는 뿌리 깊게 내린 인간의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수렵과 채집으로 하루하루를 살며 미래를 계획할 필요가 없었던 시대에서부터 진화해 내려온 유물이 아닐까 한다. 농경시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했고,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장차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준비했다.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면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고 새로운 작물 재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야 하는 농업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땐 안주할 새도 없었다.

오늘날 대부분은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기보다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회사는 모든 일이 오류 하나 없이 매끄럽게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모든 게 정확하게 돌아간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늘 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어디에선가 또 다른 문제가 터지려 한다. 회사가 이런 곳이기에 경영진과 직원들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경영자로서 나는 기회와 위험에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늘 위기감을 갖추는 것이 내 역할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는 스위스 무역 투자청은 정부 산하의 영리 기관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사무소의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표치를 모두 달성했고,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로부터 한국 직원들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짧은 성공의 단맛을 비집고 나에게 불안이 다시 스며들었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는데,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스위스 무역 투자청의 디지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됐고, 지금까지 한국 사무소는 꽤 잘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현재 상황에 알맞은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인지, 미래를 정확히 읽고 있는 것인지, 문제나 기회를 암시하는 신호를 놓친 적은 없는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장기전으로 가고 있고, 이 기회에 우리는 제대로 된 디지털 전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과 스위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직원들은 현재 상황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걱정을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따지고 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히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라면 안주함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