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피해자가 가해자 찾아갔다?…대법 "진술 신빙성 문제 없어"
강간 피해자가 범행을 당한 다음날 혼자서 직접 가해자를 찾아갔다는 이유 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강간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를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강제추행) 및 상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월 경북 구미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B씨를 강간했다. 다음날 B씨가 사과를 듣기 위해 혼자서 A씨를 찾아오자, A씨는 B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를 재차 강간했다.

A씨 측은 “강간 피해자가 혼자서 가해자 집을 찾아간 것이 일반적인 경험칙이나 통념에 비춰 범죄 피해자로서는 취하지 않았을 특이하고 이례적인 행태”라며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또 B씨와 ‘사귀는 사이’였던 만큼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범죄를 경험한 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이라며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나 가해현장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볼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자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거나 피하지 않고 나아가 가해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로서는 사귀는 사이인 것으로 알았던 A씨가 자신을 상대로 느닷없이 강간 범행을 한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고 해명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의 그런 심리가 성폭력을 당한 여성으로서는 전혀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