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은 평생 소리하다 죽어야죠. 완창이 육체적으로 힘들 긴 하죠. 근데 암시랑토 안혀요(아무렇지 않아)"
 “소리꾼이 소리 허다 죽어야제” 심청가 완창 나선 명창 김영자
22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만난 명창 김영자(70)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경상도 방언이 섞인 말투로 완창 판소리에 나선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열 살 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를 낸 지 벌써 50년. 인생 자체가 소리였다. "평생 소리를 냈는데, 소리꾼한테 판소리 하지 말라는 건 밥먹지 말란 이야기죠. 소리 없는 인생은 생각조차 못 해봤죠"

50년 넘게 소리를 해 온 명창 김영자가 '심청가' 완창에 나선다. 24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김영자의 심청가-강산제' 공연을 통해서다. 지난 9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받은 후 펼치는 첫 완창 무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 보유자인 김청만 고수와 그의 제자 조용수 고수가 북채를 잡고 무대에 함께 오른다. 유영대 고려대 한국학 교수가 해설과 진행을 맡는다.

김영자 명창은 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뛰어난 소리 기량을 인정받아 198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는 심청가로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소리꾼이 소리 허다 죽어야제” 심청가 완창 나선 명창 김영자
보유자가 된 배경엔 그의 성장과정이 있다. 김 명창은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강산제 보성소리 계승자 중 한 명인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수궁가를 배웠다. 강산제는 19세기 후반 전북 순창 출신 소리꾼인 박유전 명창이 이어 온 판소리를 가리킨다.

"아버지가 매일같이 축음기로 판소리를 들어 저도 익숙했었죠. 소리꾼이 된다고 했는데 '고생하고 인정받을 게 뻔하다'고 반대했죠. 그런데 1960년 즈음 돌아가시 직전에 '소리가 정말 하고 싶으냐'라 물으셨어요. 어린 맘에 하고 싶다 말하니 '인자 정권진 선생을 찾아가라'라 말씀하셨죠"

김영자는 정 명창이 타계한 후 김소희, 김준섭, 박봉술, 성우향 등 기라성 같은 스승을 만나 판소리 다섯 바탕(심청가·수궁가·춘향가·적벽가·흥부가)을 배웠다.

"선생님들에게 많이 배웠죠. 판소리 하나에만 머물 수도 있었는데 다섯 바탕을 두루 거치고 또 토막소리도 배워 극을 하는 데도 도움됐죠. 이번 공연에서도 혼신을 다해 창을 쏟아낼 겁니다"

그가 부를 심청가는 다섯 바탕 중에서도 완창하기 까다로운 작품이다. 비극적인 대목이 4시간 가까이 이어져서다. "가사 전체에서 해학적인 대목이 몇 개 없어요. 뻉덕어멈이 나오거나 방아찧는 장면 뿐이죠. 4시간 가까이 울고불고 하다보니 감정적으로 힘들어요"

제자들도 많았지만 70세 노구를 끌고 무대에 나선 까닭은 뭐였을까. 김 명창은 '프로 정신'을 이야기했다. "보유자로 인정받고 국립극장에서 부르는 데 힘들다고 거절하면 그게 소리꾼인가요. 나이엔 장사 없다지만 극복해야죠. 관객들 입에서 '김영자 아직 살아있구만' 이런 말이 나오게 할겁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