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한국 스포츠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는 물론 국제 스포츠사(史)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회장은 학창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탁구, 테니스, 골프는 물론 동계스포츠인 스키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서울사대부고 재학중 2년간 레슬링 선수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서울사대부고 동기인 고(故)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은 "레슬링을 한 이 회장과 유도를 한 나는 서로 힘자랑을 하며 겨루기도 했다"며 "이 회장의 힘에 밀려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많다"고 회고했다.

특히 애착을 드러낸 종목은 골프 야구 럭비, 이른바 '삼성의 3대 스포츠'다. 이 회장은 "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룰과 에티켓과 자율을, 기업경영과 비슷한 야구에서는 스타 플레이어와 캐처정신을, 럭비에서는 투지와 추진력, 단결력을 배울 수 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정정당당하며, 규칙과 에티켓을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자 가치”라고 생전에 강조했다.

이 회장의 스포츠 사랑은 기업가가 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삼성스포츠단을 만들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인기 종목을 비롯해 탁구, 테니스, 럭비, 배드민턴, 태권도, 육상 등 비인기 종목에 이르기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이 스포츠단 운영에 들이는 비용은 연간 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이 회장은 스포츠 행정가로써도 많은 역할을 했다. 레슬링협회장(1982~1997년)을 거쳐 대한체육회 이사를 재직하면서 심권호 선수가 올림픽 2연패(1996년, 2000년)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이 회장이 국내 스포츠사에 가장 크게 남긴 족적은 평창올림픽 유치다. 이 회장은 1996년 7월 애틀란타올림픽 기간 중 열린 제 10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위원에 선출된 후 20년 넘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00명이 넘는 IOC 위원들을 모두 만나 평창 개최를 통한 효과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회장이 1년6개월간 비행기에 오른 것만 11차례에 달하고, 170일간 해외 출장을 소화한 건 아직도 널리 회자되는 일화다. 이 회장은 2011년 7월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에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 삼성은 20년 넘게 IOC를 후원하는 '큰 손' 자리매김하면서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 체육이 입지를 다지는 데 일조했다. 삼성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로컬 스폰서로 올림픽에 처음 참여했고, 1997년부터 IOC와 톱(TOP·The Olympic Partner) 후원 계약을 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두 차례 계약 연장을 거치면서 2028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까지 30년간 IOC를 지원하는 최고 레벨 후원사가 됐다. 코카콜라, 아토스,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들만 이름을 올려 온 올림픽 메인스폰서는 최소 수백 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을 넘게 후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2017년 8월 11일 IOC 위원 자리를 내놓았다. 그러자 IOC는 2017년 9월 16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131차 IOC 총회에서 10년간 국제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을 감안해 IOC 명예위원으로 추대했다.

정부도 스포츠계에 이 회장이 남긴 업적을 인정했다. 이 회장은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을 받았다.

김순신/조희찬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