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등처럼 생긴 장치를 들고 버튼을 누르자 빛이 나온다. 물체가 없는데도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심지어 그림자 사람들이 움직이고 서로 속삭이기까지 한다. 인천 영종도 국제도시의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전시 중인 문준용 작가의 'Augmented Shadow-Inside'(증강그림자-내부)이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Augmented Shadow-Inside'. 실제 그림자와 가상의 그림자가 겹치도록 해 증강현실을 경험하게 한다. 관람객이 개집 안으로 손전등을 비추자 개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다.
문준용의 미디어아트 설치작품 'Augmented Shadow-Inside'. 실제 그림자와 가상의 그림자가 겹치도록 해 증강현실을 경험하게 한다. 관람객이 개집 안으로 손전등을 비추자 개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다.
지난 23일 개막한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은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인천광역시·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메세나협회가 후원하는 미술축제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삶과 예술의 미래를 상상해보기 위해 공모를 통해 선정한 9점의 작품을 '커넥트(CONNECT)'라는 주제로 선보이고 있다. 문 작가를 비롯해 양정욱, 우주+림희명, 이정인 크리에이션, 조영각, 최성록, 태싯그룹(Tacit Group), 콜렉티브 A, 프로토룸(PROTOROOM) 등이 각기 독특한 콘셉트의 작품을 내놓았다.

관객참여형인 문 작가의 작품은 여느 미디어아트 작품과 달리 주제가 어렵지 않고 흥미를 자아낸다. 무대처럼 마련된 어두운 공간에는 사각의 뼈대만 있는 집과 벤치, 개집 등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원과 계단 등 몇 가지 단순한 형태가 그려져 있다. 관람객이 손전등을 비추면 센서의 반응과 빛의 각도에 따라 숨어있던 가상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 밖으로 손전등을 비추면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속삭인다. 빛의 각도에 따라 컬러 영상이 나오기도 한다. 개집 안을 비추면 그림자 개가 등장한다.
문준용의 'Augmented Shadow-Inside'. 관람객이 손전등을 비추자 실제로는 없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나 속삭인다.
문준용의 'Augmented Shadow-Inside'. 관람객이 손전등을 비추자 실제로는 없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나 속삭인다.
문 작가는 "실제 그림자와 가상의 그림자를 겹치게 한 작품"이라며 "현실공간의 나(관객)와 가상공간의 사람들(그림자)이 서로 볼 수 있도록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실내와 창문 밖 등 공간구조에 따라 인물, 배경, 사건의 서사를 넣는 시도를 통해 관객들이 흥미롭게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문 작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로 유명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미디어아트 작가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증강현실, 실감 인터페이스, 사운드 시각화,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 등의 실험 미디어와 컴퓨테이션을 활용한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외 미술관과 미술 행사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김승범과 후니다 킴으로 구성된 작가그룹 프로토룸의 관객참여형 미디어 설치작품 'METAPIXELS'. 스크린 앞에 놓인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200만 개의 픽셀을 향해 명령어가 전달되고, 이에 따라 스크린의 이미지가 추상화처럼 바뀐다.
김승범과 후니다 킴으로 구성된 작가그룹 프로토룸의 관객참여형 미디어 설치작품 'METAPIXELS'. 스크린 앞에 놓인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200만 개의 픽셀을 향해 명령어가 전달되고, 이에 따라 스크린의 이미지가 추상화처럼 바뀐다.
김승범과 후니다 킴으로 이뤄진 창작그룹 프로토룸의 'MetaPixels'는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에 여러 대의 카메라로 메시지를 보내 디지털 스크린의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관객참여형 설치작품이다. 관객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만약 붉다면 강해져라 흘러내려라 아니면 흩어져라' 등의 메시지를 픽셀에 보낸다.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이미지 속 200만개의 픽셀은 이 지시에 따라 붉은 색이 흘러내리고 흩어지면서 추상화처럼 바뀐다.
'우주+림희영'의 'MACHINE WITH TREE'. 죽은 나무와 금속 기계로 이뤄진 키네틱 작업이다.
'우주+림희영'의 'MACHINE WITH TREE'. 죽은 나무와 금속 기계로 이뤄진 키네틱 작업이다.
함께 사는 집에 액자를 걸려고 하는 두 사람이 액자의 위치를 정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맞춰 나가는 과정을 다룬 양정욱의 설치작품 '당신은 옆이라고 말했고, 나는 왼쪽이라고 말했다', 사물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나무의 움직임을 구현한 '우주+림희영'의 'MACHINE WITH TREE', 인간과 동물·로봇·괴물과 같은 가상의 존재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생성, 배치, 폐기, 재활용되는 이야기를 다룬 최성록의 SF 애니메이션 'GREAT CHAIN OF BEING' 등도 흥미롭다.

내달 1일까지 열리는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의 작품과 공연, 아티스트 토크와 키즈 프로그램 등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주요 공연 및 프로그램 실황은 파라다이스문화재단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공유된다. 축제가 끝난 후에는 11월 7일부터 4개월간 '파라다이스 아트랩+'로 아카이브 전시가 이어진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