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AI시대 좋은 교사의 '실력'이란 무엇인가
문제1. 생사의 갈림길에서 당신은 다음 두 의사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a)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b)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

문제2. 다음 두 학생 중 나중에 의사가 돼 각기 다른 진단을 내렸다면 누구의 의견을 따르겠는가?

a)수능 성적으로 합격한 일반의대 학생 b)시민단체장 추천을 받아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한 공공의대 학생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해 입학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천제로 뽑는다고 하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만든 홍보물 내용이다. 공개되자마자 추천제 입학에 대한 불공정 이슈로 뒤덮이고 오히려 의료계에 엄청난 역풍이 불었다. 의사가 인성과 태도가 더 중요하지 전교 1등이라고 좋은 의사가 되는 거냐고 성토하는 기사와 칼럼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병을 잘 못 고치는 의사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 좋은 인성은 ‘좋은 사람’의 조건이지 ‘좋은 의사’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좋은 의사’의 가장 기본적 조건은 병을 잘 고치는 실력이다.

그런데 의협 홍보물대로 전교 1등이거나 수능으로 합격한 의대생이면 더 실력 좋은 의사의 역량을 갖게 될까? 서울대 2013~2017년 입학생의 전형별 평균학점을 보면 불공정하다고 비난받는 학생부종합전형 출신이 가장 높고, 가장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수능 출신이 가장 낮다. 이는 수능 성적이 곧 대학에서의 실력으로 이어지지 못함을 드러낸다.

충남교육청 지원으로 내신 상·중·하 그룹별로 전과목 논술형 국제 대입시험인 국제바칼로레아(IB) 기출문제 시험을 치른 실험에서 현 공교육에서의 내신 석차가 뒤집혔다. 즉 우리 공교육에서의 상위권 학생이 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IB와 같은 글로벌 역량 시험에서까지 상위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경쟁에서 이긴 한국 학교의 전교 1등이 세계적 경쟁력은 없을 수 있음이 드러났다.

개혁적 수업 방법으로 알려진 문제기반학습(PBL·Problem-Based Learning)은 원래 1960년대 미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시작됐다. 의대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암기한 전교 1등이 실제로 임상에서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경험에 기반해 새로운 교수법이 등장한 것이다. 지식·정보의 숙지가 실력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온라인 교육이 일상화되면서 교육의 질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진정 실력 있는 ‘좋은 교사’란 뭘까? 지식을 잘 집어넣어 주는 실력은 일반 교사들이 유명 ‘1타 강사’를 따라잡기 어렵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1타 강사들의 강의와 동일한 단원을 애써 본인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느라 고생한다고 ‘좋은 교사’로 불리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의사, AI 판사가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닌 것처럼 AI 교사도 이미 세계적으로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집어넣는 교육’으로는 더 이상 교사·교수들의 설 자리가 없다.

최근 KAIST 융합인재학부는 A, B, C 학점 서열을 없앴다. 비전공자가 학점에 불리할까 봐 다양한 전공과목을 듣지 못하는 걸 해결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줄 세우기 하면 1등은 AI일 테니 지식 숙지 서열화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 책 100권을 읽고 각각에 대한 서평을 50쪽 이상 글로 쓰거나 2시간 이상 말로 하는 영상을 찍어 제출하는 것을 졸업 요건으로 했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깊이 있는 ‘내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실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철학이 전제돼 있다.

AI 시대에 진정한 ‘실력’이란 무엇일까? 실력을 공정으로 보는 시각에 앞서 생각할 문제는 무엇을 실력이라고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 기준이다. AI가 더 잘하는 분야를 전력질주해서 남보다 조금 앞서 봐야,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그 너머의 생각을 꺼내는 실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자동차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에 기껏 남들보다 좀 더 나은 마차를 만든 성과가 ‘시대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