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산업 변화를 선점하기 위한 전초전이 시작됐다. 언택트(비대면), 의료기기 등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분야의 기술 표준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표준 선점에 달린 코로나 산업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  "물류·의료·교육…비대면 기술표준 한국이 선점"
기술 표준은 쉽게 말해 특정 산업 분야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지켜야 할 기준이다. 누가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지에 따라 해당 산업 및 국가 간 승패가 확연하게 갈린다.

정부는 최근 민간 기업이 중심이 된 ‘비대면 경제 표준 오픈포럼’을 발족했다. 이학성 LS일렉트릭 고문이 포럼 회장을 맡고 기업과 학계, 연구소 등에서 100여 명의 민간 전문가가 회원으로 참여한다. 여기서는 스마트제조와 무인사업장, 비대면 의료 및 물류, 비대면 교육 등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분야의 기술 표준을 선점해갈 계획이다.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사진)은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 활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코로나 시대 비대면 경제의 주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관련 핵심기술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 전환기에는 누가 특정 기술 표준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산업 승패가 갈렸다. 비디오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의 표준을 놓고 펼쳐진 VHS와 베타맥스 간 경쟁이 대표적이다. 10년여간의 경쟁 끝에 VHS가 표준으로 정해지면서 베타맥스 제품은 물론 관련 생산라인까지 폐품 처리됐다.

1981년 컴퓨터 운영체제(OS) 표준에서 IBM에 밀린 애플은 PC 시장을 대거 내주고 2001년 아이팟이 출시될 때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2000년을 전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와 웹브라우저 경쟁에서 패배한 넷스케이프는 이제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표준 선점이 해당 기업의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다 보니 각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미국은 정밀의료, 첨단제조, 스마트시티 등 9개 전략기획 분야의 표준을 선점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일본은 산업계와 학계, 연구기관 등까지 참여하는 ‘초연결산업’ 표준화 기구를 신설했다. EU도 역내 표준화 조직을 통해 사물인터넷(IoT) 관련 산업의 표준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의료 등에서 5년간 중점 추진

기술표준원은 △유통·물류 △의료 △교육 등을 표준 선점을 위한 3대 핵심 서비스로 정했다. 우선 유통·물류에서는 제품이 창고에서 배송·보관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비대면화하기 위한 기술을 표준화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 등 온라인쇼핑몰 이용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이들 업체의 물류 처리와 관련된 기술을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무인 창고 자동제어에서 시작해 드론 및 로봇을 이용한 무인 배송까지 연결 기술을 표준화할 계획이다.

의료에서는 비대면 진료기술 관련 국제 표준화를 중점 추진한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체온·혈압·맥박 등 생체신호 데이터 수집과 이를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방법이 대상이다.

교육에서는 학습보다 교수(敎授) 분야를 중심으로 국제 표준화에 도전한다. 학습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이미 표준화가 상당 부분 진척돼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교수 관련 비대면 기술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기술표준원은 강의 자료 작성·관리, 강좌 구성 등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및 앱 개발 기술을 국제 표준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등과 협업하고 있다.

기술표준원은 내년 ‘제5차 국가표준기본계획’ 수립 과정에도 이런 내용을 포함시켜 2025년까지 중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원장은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중 비대면과 관련된 부분도 우선적으로 표준화에 나설 계획”이라며 “일단 50종의 핵심 표준을 개발하고 관련 인증체계까지 독자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