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의료서비스 위기와 의료인력 양성
한국 건강보험제도는 1965년 호남비료의료보험조합을 그 시초로 한다. 직장조합에서 출발한 건강보험은 1977년 500인 이상 고용사업장을 대상으로 의무화된 데 이어 1989년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면서 한국의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한국의 2018년 기준 GDP 대비 경상의료비 지출은 8.1%로 OECD 평균(8.8%)보다 낮지만 기대수명·암사망률 등 건강지표는 우수하다. 비용 대비 효과적인 의료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병상 기준 약 90%의 의료서비스를 민간이 주도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 서비스와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밀접한 의료서비스에는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의료 자원이 집중되면서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어촌에는 의료 접근성, 기대여명 등의 건강 수준 격차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사는 곳과 경제적 형편에 관련 없이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자 공공의료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는 강진의료원도 정부와 전라남도의 지원으로 기능을 강화해 왔다.

지역사회에 기본 의료를 제공하는 한편, 민간이 기피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응급진료, 감염병 대응 등의 역할이 그것이다.

지난 1월부터 계속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강진의료원은 광주·전남 환자 134명을 진료했는데, 중증환자는 감당이 어려워 대학병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었다. 중증환자를 감당할 시설 부족 문제는 물론, 의료인력 부족에 의한 서비스의 공백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전남지역의 의과대학 신설은 30여 년 전부터 정부에 꾸준히 건의해 온 도민의 염원이었다. 그동안 추진이 더뎠지만 지난 7월 23일 정부·여당이 의과대학이 없는 곳에 의대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도민의 기대가 컸다.

최근 정부·여당과 의료계가 원점 재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전남지역 의대 신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농어촌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성적인 문제면서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간이 의료서비스를 주도하는 미국 일본 등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를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은 농어촌 지역의사 양성을 위해서 1972년 자치의과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은 자치단체별로 2~3명을 선발해 6년간 무료교육한 뒤 취약지에서 9년간 의무복무하게끔 한다.

이 제도는 성공적으로 정착했으나 정원 123명으로 취약지 의료인력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에 기존 67개 의과대학에 별도 정원으로 지역정원제도를 도입해 지역에서 근무할 뜻이 있는 학생을 선발, 일정 기간 근무를 조건으로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를 통해 매년 의대 졸업생 1100여 명을 취약지에 배치하고 있으며 이 중 68.3%는 9년간 의무복무 이후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해서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필자는 한국 전체의 의료인력 확대보다 당장 우리 지역 의료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필자가 근무하는 의료기관에서도 의료인력을 구하지 못해 필수 의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늘 걱정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감당하지 못해 유출되는 환자가 연간 80만 명에 달하고, 1조3000억원의 의료비가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의료인력은 지금 의대를 설립한다고 해도 전문의까지는 10여 년이 소요되므로 공급이 비탄력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전남지역 의과대학 신설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의제다. 농어촌에도 사람이 살고 그들도 아플 때가 있다. 더러는 급박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제대로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헌법 제36조 제3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