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반가운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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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천문대에서 맞은 점심 산책길에 잔뜩 어질러진 나뭇잎이 깊어진 가을을 느끼게 한다. 산꼭대기의 단풍이 내려가기 시작해 8부 능선쯤에 걸쳤다. 구절초인지 쑥부쟁이인지 모를 가을의 대명사인 들국화가 만개했다. 야간 산책길에도 반겨주는 꽃이다. 코로나19 시기에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아졌다. 달라진 점이라면 가능한 한 모른 척 지나치는 것이다. 때로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북적대는데, 그러면 아예 멀찍이서 되돌아와 버린다.
지난 14일 해질녘엔 구름이 조금 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밤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를 생각하면 오랜만에 천문대에 머무르다 만난 맑은 날이 무척 반가웠다. 연구실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서 아직 여명이 있지만 화성이 떠오르는 모습과 전천(全天)을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해 연속촬영이 되도록 했다.
밤 9시 반쯤, 밤하늘을 살펴보는 천문대의 전천 카메라를 보니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옅은 은하수 위에 아직 여름철 대삼각형이 1.8m 망원경 돔 위에 떠 있었다. 은하수 오른쪽 끝에 낮게 목성과 토성이 지고 있었다.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전갈자리와 궁수자리는 벌써 졌다. 그런데 왼쪽인 동쪽 하늘에 생소한 밝은 별이 하나 보였다. 금성이라면 서쪽인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화성이었다. 얼마 전에 화성이 태양과 지구를 잇는 일직선에 놓이는 ‘충(衝)’의 위치를 지났는데 이때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여서 평소보다 무척 밝아진다. 목성은 이미 서쪽에서 지고 있어서 이 시간쯤이면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 대략 26개월 주기로 만나는 충인데, 26개월 전인 2018년 여름에도 마침 천문대를 찾은 고등학교 학생들과 밤새 별을 보면서 멋진 화성을 봤던 기억이 났다. 붉고 밝게 보이는 화성은 한동안, 적어도 10월 말까지는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밤새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절별 별자리 중에서 유독 가을철 별자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일등성의 밝은 별이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높게 떠오른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보면 페르세우스 이중성단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시오페이아자리 옆으로 (남쪽으로) W자를 이루는 별자리 크기 정도 떨어진 곳에 안드로메다은하가 보여야 했는데, 아쉽게도 맨눈으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낮은 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들어오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바빠졌다.
보현산의 서쪽 봉우리까지 여분의 카메라를 삼각대에 얹어서 나서는데 바스락거리면서 바닥을 구르는 낙엽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서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다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갑자기 들리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움직임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래도 서쪽 봉우리에 올라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반짝이는 별을 보면 이런 두려움은 한순간에 다 잊힌다.
종종 서쪽 봉우리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사진을 자동으로 찍도록 해 두고 연구실로 돌아와 밤새 기다리기도 하지만, 요즘은 밤에도 사람이 자주 올라와서 그렇게 못 한다. 야간에 캠핑을 즐기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그냥 빙 둘러서 하늘 사진을 한 번 찍은 뒤 돌아왔다. 곧이어 구름이 많아져서 설치해 둔 카메라도 모두 챙겼다.
자정을 넘기고 나니 옅은 구름이 많아졌지만 1.8m 망원경의 관측자는 포기하지 않고 밤새 관측했다. 연구자는 관측 대상과 목적에 따라 아주 좋은 날이 필요하기도 하고, 옅은 구름에도 관측을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보현산천문대의 바쁜 밤이었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지난 14일 해질녘엔 구름이 조금 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밤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를 생각하면 오랜만에 천문대에 머무르다 만난 맑은 날이 무척 반가웠다. 연구실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서 아직 여명이 있지만 화성이 떠오르는 모습과 전천(全天)을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해 연속촬영이 되도록 했다.
밤 9시 반쯤, 밤하늘을 살펴보는 천문대의 전천 카메라를 보니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옅은 은하수 위에 아직 여름철 대삼각형이 1.8m 망원경 돔 위에 떠 있었다. 은하수 오른쪽 끝에 낮게 목성과 토성이 지고 있었다.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전갈자리와 궁수자리는 벌써 졌다. 그런데 왼쪽인 동쪽 하늘에 생소한 밝은 별이 하나 보였다. 금성이라면 서쪽인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화성이었다. 얼마 전에 화성이 태양과 지구를 잇는 일직선에 놓이는 ‘충(衝)’의 위치를 지났는데 이때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여서 평소보다 무척 밝아진다. 목성은 이미 서쪽에서 지고 있어서 이 시간쯤이면 밤하늘에서 가장 밝다. 대략 26개월 주기로 만나는 충인데, 26개월 전인 2018년 여름에도 마침 천문대를 찾은 고등학교 학생들과 밤새 별을 보면서 멋진 화성을 봤던 기억이 났다. 붉고 밝게 보이는 화성은 한동안, 적어도 10월 말까지는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밤새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쪽 하늘에 붉고 밝은 火星
전천 카메라를 보고 난 후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맞으며 잠시 기다리니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영상 6도의 기온이었지만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밤만큼은 이젠 겨울이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하늘을 봤나 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플레이아데스 산개성단이 벌써 보였고, 왼쪽으로 마차부자리도 많이 올라왔다. 화성은 동쪽이 아니라 남중 가까이 머리 위에 있었다. 가을철 대표 별자리인 페가수스자리와 안드로메다자리는 어디 있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다.계절별 별자리 중에서 유독 가을철 별자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일등성의 밝은 별이 없어서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높게 떠오른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보면 페르세우스 이중성단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카시오페이아자리 옆으로 (남쪽으로) W자를 이루는 별자리 크기 정도 떨어진 곳에 안드로메다은하가 보여야 했는데, 아쉽게도 맨눈으로 찾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낮은 구름이 서쪽 하늘에서 들어오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바빠졌다.
보현산의 서쪽 봉우리까지 여분의 카메라를 삼각대에 얹어서 나서는데 바스락거리면서 바닥을 구르는 낙엽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서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숲길을 걷다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갑자기 들리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움직임이 저절로 멈춰진다. 그래도 서쪽 봉우리에 올라 도시의 화려한 불빛과 반짝이는 별을 보면 이런 두려움은 한순간에 다 잊힌다.
관측에는 대기가 깨끗한 날이 좋아
화려한 도시 불빛은 하늘을 밝게 하고, 은하수를 옅게 만드는 주범이라 천문학자에겐 큰 고민거리다. 가끔 낮은 안개가 도시를 덮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하늘로 올라가는 불빛을 가려줘 더 멋진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이날은 그런 날이 아니었다. 깨끗한 대기는 기분을 좋게 했지만 더불어 불빛도 더 높게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천체 연구를 하는 사람은 이런 불빛의 영향보다는 대기의 변화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은하수가 잘 보이는 낮은 구름이 낀 날보다 대기가 깨끗한 날을 훨씬 좋아한다.종종 서쪽 봉우리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사진을 자동으로 찍도록 해 두고 연구실로 돌아와 밤새 기다리기도 하지만, 요즘은 밤에도 사람이 자주 올라와서 그렇게 못 한다. 야간에 캠핑을 즐기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그냥 빙 둘러서 하늘 사진을 한 번 찍은 뒤 돌아왔다. 곧이어 구름이 많아져서 설치해 둔 카메라도 모두 챙겼다.
자정을 넘기고 나니 옅은 구름이 많아졌지만 1.8m 망원경의 관측자는 포기하지 않고 밤새 관측했다. 연구자는 관측 대상과 목적에 따라 아주 좋은 날이 필요하기도 하고, 옅은 구름에도 관측을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만난 보현산천문대의 바쁜 밤이었다.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