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해산령 넘어야 본다…물이 빚은 아홉가지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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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지를 가다 (1)
비수구미
한국의 오지를 가다 (1)
비수구미
편의점도 없다. 4가구 11명이 민박·토종꿀을 치며 살아가는 강원도 화천 오지 중 오지…
그래도 이장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속에 찌들지 않고 만족하며 살아간다고 …
파로호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는 십승지지(十勝之地)가 나온다. 전쟁이나 전염병, 흉년에도 끄떡없는 대표적 명당이자 깊은 피난처이기도 했다. 정감록에 언급된 오지(奧地) 중 한 곳이 강원도 산골짜기 삼둔, 오가리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오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연가리, 명지가리, 아침가리, 명가리, 적가리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정감록 그대로의 오지 마을이었다. 1주일치 신문이 한꺼번에 배달되고, 기지국이 멀어 휴대전화도 무용지물이었다. 편의점은커녕 동네가게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산업화되고 산속까지 도로가 깔리면서 ‘완전한 오지’와는 거리가 생겼다. 스마트폰 안 터지는 곳이 없고 사람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코로나19로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언택트(비대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문득 오지가 그리워졌다. 마음으로 동경하던 오지가 아니라 우리 땅에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전적 의미의 오지가 아닐지라도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관계의 버거움에서도 조금은 물러선 오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코로나는 어찌 보면 개발과 발전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자초한 재앙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지키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오지 마을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읽어 가시길.
고운 단풍에 취해 곡예를 하듯 달리다 보면 어느덧 해산전망대다. ‘해산’ 혹은 ‘일산(日山)’이라고 하는 이곳은 화천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곳이다. 골짜기 사이로 새파란 파로호가 내려다보인다. 해산전망대에서 평화의 댐 갈림길까지 가면 철책이 있고 철책 사이로 다시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파로호와 산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2㎞ 정도 들어간 후 선착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비수구미 마을을 제대로 트레킹하고 싶다면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 계곡으로 향하는 생태길 코스가 좋다. 생태길 초입에서 마을까지는 약 6㎞. 길다면 길지만 한창 화사한 단풍과 청정한 계곡을 걷기에 피곤을 잊는다. 생태길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국내 야생 난초의 최대 서식지이기도 해 난초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길은 맑고 고요하다.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나무 사이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햇살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빨간색 출렁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그제야 마을이다.
6·25전쟁 후 피란 온 이들이 정착해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됐다. 한때 100여 가구가 살았지만 1970년대부터 화전민 정리 정책으로 하나둘 도시로 빠져나갔다. 지금은 장문복 화천2리 이장을 비롯해 4가구 11명이 식당과 민박, 토종꿀을 치며 살아간다. 삶의 애환이 묻어 있을 법한데 장 이장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한다.
비수구미 마을과 맞닿은 파로호는 잔잔하고 고요하다. 그 물결 속 숨은 역사가 파란만장하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日帝)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천댐을 건설하며 만들어졌다. 원래 이 지역 호수는 ‘대붕호(大鵬湖)’라 일컬었지만 일제가 ‘신통력이 있는 거대한 새’를 뜻하는 이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천호’로 다시 불렸다.
비수구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룻밤 묵는 것이 좋다. 파로호의 물안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새벽 길을 떠나면 산소 100리길에 맞닿게 된다.
북한강을 따라 40㎞가량 이어지는데, 그중 물 위에 뜬 부교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숲으로 다리’ 구간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곳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과 해질 무렵이 그윽하다.
장문복 이장 댁에서 산채밥상. 고사리, 곰취, 참나물 등 집 주변에서 직접 뜯어 말린 10여 가지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가 올라간 소박한 시골 밥상이 일품.
▶몸 누일 곳
이장 댁을 포함해 민박집이 세 곳이다. 마을에서 파로호 물길을 따라 한 시간 거리에 에코스쿨캠핑장이 있다. 에코스쿨캠핑장은 화천군에서 옛 수동분교 터에 조성한 규모 큰 캠핑장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가볼 만한 곳
비수구미 근처의 ‘딴산’은 말 그대로 산이다. 그런데 마치 섬처럼 홀로 뚝 떨어져 있어 딴산이라는 재미난 이름이 붙었다. 높이 80m 절벽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가 장관이다. 꺼먹다리(등록문화재 제110호)는 상판이 검은색 콜타르 목재라서 꺼먹다리라고 불린다. 80년 세월을 견뎌낸 다리는 4개국 합작품이다. 일제가 해방 전 기초를 놓았고, 6·25전쟁 때 소련과 북한이 들어와 교각을 올렸으며, 휴전 후 화천군이 상판을 놓았다.
화천=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그래도 이장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속에 찌들지 않고 만족하며 살아간다고 …
파로호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인생을 즐기고 있다고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는 십승지지(十勝之地)가 나온다. 전쟁이나 전염병, 흉년에도 끄떡없는 대표적 명당이자 깊은 피난처이기도 했다. 정감록에 언급된 오지(奧地) 중 한 곳이 강원도 산골짜기 삼둔, 오가리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오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연가리, 명지가리, 아침가리, 명가리, 적가리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정감록 그대로의 오지 마을이었다. 1주일치 신문이 한꺼번에 배달되고, 기지국이 멀어 휴대전화도 무용지물이었다. 편의점은커녕 동네가게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산업화되고 산속까지 도로가 깔리면서 ‘완전한 오지’와는 거리가 생겼다. 스마트폰 안 터지는 곳이 없고 사람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코로나19로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언택트(비대면)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문득 오지가 그리워졌다. 마음으로 동경하던 오지가 아니라 우리 땅에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전적 의미의 오지가 아닐지라도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관계의 버거움에서도 조금은 물러선 오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코로나는 어찌 보면 개발과 발전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자초한 재앙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지키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오지 마을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읽어 가시길.
고운 단풍 바다 해산령의 아찔한 매력
강원 화천의 비수구미 마을은 제법 이름이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럼에도 찾아가는 길은 아직도 험난하기 그지없다. 비수구미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마치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뻗은 해산령을 넘어가야 한다. 굽이를 돌 때마다 붉은색 단풍이 시위라도 하듯 화사하게 펼쳐진다. 단풍의 바다다.고운 단풍에 취해 곡예를 하듯 달리다 보면 어느덧 해산전망대다. ‘해산’ 혹은 ‘일산(日山)’이라고 하는 이곳은 화천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곳이다. 골짜기 사이로 새파란 파로호가 내려다보인다. 해산전망대에서 평화의 댐 갈림길까지 가면 철책이 있고 철책 사이로 다시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파로호와 산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2㎞ 정도 들어간 후 선착장 앞에 차를 세워두고 산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비수구미 마을을 제대로 트레킹하고 싶다면 해산터널에서 비수구미 계곡으로 향하는 생태길 코스가 좋다. 생태길 초입에서 마을까지는 약 6㎞. 길다면 길지만 한창 화사한 단풍과 청정한 계곡을 걷기에 피곤을 잊는다. 생태길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국내 야생 난초의 최대 서식지이기도 해 난초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길은 맑고 고요하다.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나무 사이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햇살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빨간색 출렁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그제야 마을이다.
신비한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
비수구미(秘水九美)를 한자로 풀면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이다. 가는 길이 그렇다. 마을은 오래전 화천댐과 파로호가 생기면서 길이 막혀 오지 중의 오지가 됐다. 비수구미는 일제 강점기 나무를 베 뗏목을 만들어 한강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고 한다.6·25전쟁 후 피란 온 이들이 정착해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됐다. 한때 100여 가구가 살았지만 1970년대부터 화전민 정리 정책으로 하나둘 도시로 빠져나갔다. 지금은 장문복 화천2리 이장을 비롯해 4가구 11명이 식당과 민박, 토종꿀을 치며 살아간다. 삶의 애환이 묻어 있을 법한데 장 이장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한다.
비수구미 마을과 맞닿은 파로호는 잔잔하고 고요하다. 그 물결 속 숨은 역사가 파란만장하다. 파로호는 1944년 일제(日帝)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천댐을 건설하며 만들어졌다. 원래 이 지역 호수는 ‘대붕호(大鵬湖)’라 일컬었지만 일제가 ‘신통력이 있는 거대한 새’를 뜻하는 이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천호’로 다시 불렸다.
비수구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룻밤 묵는 것이 좋다. 파로호의 물안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새벽 길을 떠나면 산소 100리길에 맞닿게 된다.
북한강을 따라 40㎞가량 이어지는데, 그중 물 위에 뜬 부교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숲으로 다리’ 구간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곳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과 해질 무렵이 그윽하다.
알아두면 좋아요 ~
▶먹거리장문복 이장 댁에서 산채밥상. 고사리, 곰취, 참나물 등 집 주변에서 직접 뜯어 말린 10여 가지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가 올라간 소박한 시골 밥상이 일품.
▶몸 누일 곳
이장 댁을 포함해 민박집이 세 곳이다. 마을에서 파로호 물길을 따라 한 시간 거리에 에코스쿨캠핑장이 있다. 에코스쿨캠핑장은 화천군에서 옛 수동분교 터에 조성한 규모 큰 캠핑장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가볼 만한 곳
비수구미 근처의 ‘딴산’은 말 그대로 산이다. 그런데 마치 섬처럼 홀로 뚝 떨어져 있어 딴산이라는 재미난 이름이 붙었다. 높이 80m 절벽에서 떨어지는 인공폭포가 장관이다. 꺼먹다리(등록문화재 제110호)는 상판이 검은색 콜타르 목재라서 꺼먹다리라고 불린다. 80년 세월을 견뎌낸 다리는 4개국 합작품이다. 일제가 해방 전 기초를 놓았고, 6·25전쟁 때 소련과 북한이 들어와 교각을 올렸으며, 휴전 후 화천군이 상판을 놓았다.
화천=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