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이 29일 개최한 웹세미나에서 안현실 한경 전문·논설위원(모니터 왼쪽 위)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아래)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이 29일 개최한 웹세미나에서 안현실 한경 전문·논설위원(모니터 왼쪽 위)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아래)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기업규제(공정경제) 3법’에 대해 격론을 벌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을 원안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논란’까지 일고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원안 통과를 고수하고 있어 재계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여권과 법무부는 상법개정안과 집단소송제법 제정안을 놓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법 조항을 수정할 만한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태스크포스(TF)에 요청한 상법 개정안 관련 첫 공개 토론회도 지금은 개최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태다.

다섯 차례 간담회 ‘공회전’

기업들 호소·위헌 논란에도…상법개정안 밀어붙이는 정부
기업 지배구조 관련 상법개정안이 지난 8월 말 국회로 넘어간 이후 이달 29일까지 재계와 더불어민주당은 다섯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여권은 정부 원안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재계는 다중대표소송제 신설,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것을 우려해 차등의결권과 같은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 경제계 인사는 “기업 규모별로 법안 적용에 차등을 두거나, 유예 기간을 주거나, 혹은 다중대표소송제 대상을 지분 100% 보유 자회사에 한정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하지만 다섯 번의 만남에서도 정부와 여당이 한 치의 양보가 없어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재계에 따르면 자회사를 보유한 상장사의 86.1%는 중소·중견기업이다. ‘공정경제’를 강조하지만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을 겨냥한 법안이란 지적이다.

일부 조항 ‘위헌’ 논란

법조계에선 상법개정안을 두고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까지로 제한하는 조항이다.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취지이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라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이해관계자에 대해 주식소유자로서의 의결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재산권 침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이 조항이 헤지펀드의 경영권 간섭수단으로 악용될 경우 대책이 전혀 없다며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모회사의 지분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자회사 주주에 대한 주주권 침해라는 측면에서 법률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법개정안에서는 상장한 모회사의 지분을 0.01%(일반 모회사 1%)만 보유해도, 그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는 자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경우 0.01% 지분을 취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최소 135만원이다. 누구나 쉽게 소송에 필요한 지분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고, 결국 자회사 ‘개미’ 주주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인에 대한 과한 ‘엄벌주의’”

다음달 9일까지 입법예고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역시 헌법상 기본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물 수 있게 한 대목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5배의 손해배상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기업인들에 대해 형벌과 과징금 처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사적 책임까지 지우는 것은 과도한 엄벌주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오남용될 부작용 때문에 미국 외 국가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이행하기 어려운 계약 조건을 슬그머니 끼워넣은 다음 이를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뒤집어 씌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상법개정안이 ‘배임죄’라는 큰 전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상법 전문 변호사는 “헤지펀드에서 원하는 사람이 이사로 들어와서 내부 정보를 받아보고 배임으로 고소하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겠나”라며 “해당 법안이 기업활동을 장려하자는 건지 분란을 일으키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안효주/남정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