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증시에 지주회사 형태로 상장된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 주의보를 발령했다. 겉보기엔 우량한 재무제표와 달리 실제 재무상태가 나빠 상장폐지 등 투자자 피해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 상장된 외국기업 36개사 중 25개사가 역외지주사 형태로 주식을 상장했다.

역외지주사는 본국이나 해외증시 직접 상장이 어려운 중·소규모 기업들이 홍콩이나 케이맨제도 등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을 뜻한다. 해외증시 상장 규제가 강한 중국 기업들(25개사 중 24개사)이 주로 이런 형태로 국내 증시에 상장했다.

그런데 이들 중국 기업 중 12개가 분식회계와 자금난 등으로 상장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상장폐지된 14개 외국기업 중 12개가 중국 기업의 역외지주사였다.

당국은 역외지주사 특유의 ‘연결재무제표 착시’ 현상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역외지주사들은 본국의 사업자회사를 포함한 전체 연결회사의 재무제표를 공시한다. 그렇다보니 투자자가 역외지주사의 자체 수익구조나 유동자산 현황 등 상환능력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상장폐지 된 차이나그레이트는 연결재무제표상 자기자본이 5000억원이 넘었지만 254억원의 전환사채(CB) 원금을 갚지 못해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통보받았다.

역외지주사는 본국 사업자회사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는 것 또한 여의치 않다. 중국의 경우 해외 지주사에 자금을 보내려면 외환관리 당국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 등 외환거래 규제가 매우 까다롭다. 한국에 상장한 역외지주사가 한국시장에서 조달한 유상증자·CB발행 대금을 중국에 보내는 건 쉽지만 거꾸로 중국에서 자금이 역외지주사로 흘러들어가긴 어렵단 얘기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6월 코스닥시장 상장규정을 개정해 외국기업 지주사 상장은 지주사가 한국에 소재한 경우에만 허용키로 했다.

최용호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장은 “외국기업 주식에 대한 투자를 할 때 본국 사업자회사의 우량한 실적에 현혹되지 말고 역외지주사의 자체 상환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며 “향후 투자자 피해예방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