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분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가로주택정비사업 단지 현대타운 조감도.  /한경DB
지난 3월 분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가로주택정비사업 단지 현대타운 조감도. /한경DB
서울 광진구에 사는 30대 주부 안모씨는 최근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에서 ‘현대타운’ 분양이 6개월 전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해졌다. 대치동 1019 일원(1560㎡)의 현대타운은 노후 주택 29가구를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통해 아파트 42가구로 새로 짓는다. 안씨는 학군과 입지가 좋아 작년부터 청약을 벼르고 있었다. 해당 단지 전용 75㎡ 시세는 18억원에 달한다. 안씨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약홈과 분양뉴스를 빠지지 않고 챙겨봤지만 분양소식을 알 수 없었다”며 “언제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공급됐는지조차 알려진 게 없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규제로 막힌 재건축·재개발의 대안으로 주목 받았던 가로주택사업이 일반청약 대기자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이 소규모 분양이어서 공개청약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어서다.

해당 구청도 모르게 분양

4일 각 자치구에 따르면 서울 내 추진 중인 가로주택사업 70여 곳 중 대부분은 분양 물량이 30가구 미만이다.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만 놓고 보면 신규물량이 30가구(분양 단지 포함)를 넘는 곳은 총 20개 사업장 중 세 곳에 불과하다. 열 중 아홉 곳은 임의매각 등 ‘깜깜이 분양’이 될 것으로 정비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송파구에선 10개 사업장 모두가 30가구를 밑돈다. 그나마 ‘삼전동 53의8 일대’ 사업이 27가구로 신규 공급물량이 가장 많다. 다섯 곳이 추진되는 강남구에선 현대타운(신규 13가구)을 비롯해 청담동 영동한양빌라(15가구), 논현세광연립(11가구), 역삼목화연립(6가구) 등 네 곳이 30가구 미만이다. 서초구 역시 남아 있는 분양 가운데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소규모 분양이 예정돼 있다.

주택법에 따르면 30가구 미만의 소규모 분양은 공개 청약 의무가 없다. 분양가 상한제는 물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을 통한 분양가 규제도 받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도 분양과 관련한 사항을 파악하지 못한다. 한 구청 담당자는 “인허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분양가와 분양진행 방식은 물론 분양을 마친 이후에도 결과를 구청에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분양을 기다리는 실수요자들이 미처 알지도 못한 채 분양이 끝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소한의 투명성 확보해야”

전체 가구 수가 100가구 미만인 소규모 단지가 많아 외면받았던 가로주택은 서울 주택난이 심해지며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지난달 공급된 강동구 고덕동 ‘고덕 아르테스 미소지움’은 평균 경쟁률 537.1 대 1로 서울 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공급된 서초구 ‘서초 자이르네’도 300.2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두 곳 모두 신규물량이 30가구가 넘어 공개청약을 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면적 1만㎡ 미만이고 주택 20가구 이상이면서 주변이 도로로 둘러싸인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정비사업이다. 일반 정비사업에 비해 절차가 간단해 사업속도가 빠르다. 강동구가 11곳으로 가장 사업이 활발하고 송파구(10곳) 서초구(6곳) 양천구(6곳) 등에서 사업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양가와 방식 등 최소한의 정보는 조합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소규모 분양인 비강남권 단지도 많아 고덕 아르테스 미소지움처럼 인기를 끌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소규모 분양은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에서 자유로워 분양가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