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part.1] 게임체인저, 마이크로바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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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 신약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세계 첫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의 등장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국 신약 개발업체 세레즈테라퓨틱스가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Difficile) 감염증 치료제 ‘SER-109의 임상 3상 시험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고 발표하면서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이 임상 3상을 진행해 의미 있는 치료효과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산업적 의미가 크다.
SER-109의 임상 3상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환영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임상 3상이 ‘반쪽 성공’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구 제형으로 만든 것은 의미가 있지만 건강한 사람에게서 추출한 미생물의 포자를 섭취한다는 점에서 기존 분변이식(FMT) 시술과 기본 원리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작용기전(MoA)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SER-109의 약점으로 꼽힌다. 이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기업이 신약 개발을 위해 꼭 넘어야 할 허들이도 하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하게 밝히는 게 선결과제인 셈이다.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도 급증하고 있다. 2013~2017년 5년 동안 마이크로바이옴을 주제로 한 논문은 약 1만2900건이었다. 이는 지난 40년 동안 나온 이 주제 논문 개수의 80%에 달하는 것이다. 관련 전 세계 특허 등록 수 역시 2006년 262개에서 2016년 2만1000개로 10년 사이 80배 증가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 개발이 한창인 까닭은 미생물이 우리 몸에서 끊임없이 대사와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질병 중 90%가 장내 미생물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다. 가령 ‘살 빠지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이 제품은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의 영양소 흡수에 관여하는 점을 이용했다. 지방세포의 분화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의 체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장내 미생물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물 대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세계 곳곳에서 마이크로바이옴과 약물을 병용 투여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이유다. 장내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항암제의 효과 정도가 달라진다. 또 장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 70%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의 면역세포는 장내 미생물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피아(彼我)’를 학습하고 또 성숙해진다. 이런 점을 활용해 아토피 피부염이나 류머티즘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려는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장내 미생물이 만드는 다양한 화학물질도 연구자들 입장에선 풀어야 할 과제다. 어떤 화학물질은 장에 인접한 신경계를 자극해 뇌까지 영향을 준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자폐증 치료제는 이 맥락에서 나왔다.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과 관련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시장 파이는 작다. 현재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의 90%는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가 차지하고 있다. 치료제가 아닌 건강기능식품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3억 달러. 시작은 아직 미미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장이 연 15~33% 속도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레즈테라퓨틱스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 SER-109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감염증은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진 환자의 장내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이 이상 증식을 했을 때 생긴다. 지금까지 이 감염증으로 미국에서만 2만9000여 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세레즈테라퓨틱스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추출한 피르미쿠트종 박테리아를 혼합해 SER-109를 구성했다. 피르미쿠트는 흔히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테리아종이다. FDA는 SER-109를 혁신 치료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로 지정했으며, 의약품 허가를 받을 경우 세계에서 첫 번째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이 될 전망이다.
세레즈테라퓨틱스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SER-287도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SER-109처럼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분리한 표적 세균을 처리해 만든 치료제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전이성 흑색종 치료제 SER-401은 임상 1상 단계에 있다.
스위스 제약사 페링에 2018년 인수된 미국 바이오기업 리바이오틱스 또한 클로스트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 RBX-7455의 임상 3상을 최근 마쳤다. 임상 3상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RBX-7455 또한 SER-109와 마찬가지로 경구 투여 방식의 치료제다.
미국 비단타사이언스 또한 경구 투여할 수 있는 제형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VE303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의 군락 형성을 막는 인간 유래 박테리아 균주 8종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구성했다. 임상 2상 결과는 올해 중에 나온다.
해외 마이크로바이옴 스타트업들의 신약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에 집중되고 있는 까닭은 이 감염증의 치료법이 FMT와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다. 매번 건강한 기증자로부터 기증받는 게 아니라 균을 균일화할 수 있으니 안전성 면에서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오셀도 미생물로 미생물을 견제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의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오셀은 자사의 세균성 질염 치료제 LACTIN-V가 임상 2b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오셀 관계자는 “2b상 시험에서 위약에 비해 세균성 질염의 재발을 크게 줄였다”고 했다.
LACTIN-V는 질을 보호해주는 세균 균주 ‘락토바실러스 크리스파투스 CT V-05’를 함유한 국소투여형 치료제다. 이 관계자는 “세균성 질염의 경우 항생제가 거의 유일한 치료제이지만 재발률이 높은 게 문제였다”며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질내 미생물 생태계를 정상화해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기업 에이오바이옴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 후보물질 B244가 임상 2a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경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성인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얻은 결과다. B244는 암모니아 산화세균 유익균을 스프레이 제형으로 만든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다. 에이오바이옴은 임상 참여자를 성인 576명으로 늘려 임상 2b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천랩은 고형암에 대응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상재균(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세균)인 CLCC1을 활용해 개발한 것으로 간암 동물 모델에서 종양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 내년 임상 1상 돌입이 목표다.
고바이오랩은 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KBL697은 특정 장내 미생물이 면역세포인 T세포의 분화와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특성을 이용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T세포의 과잉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한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동하면서 우리 몸의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지놈앤컴퍼니는 올해 미국에서 면역항암 치료제 GEN - 001의 임상 1상을 시작했다. GEN-001은 건강한 기증자의 장에서 분류한 수지상세포, 대식세포, T세포 등의 반응을 활성화는 기능이 입증된 단일 계통 박테리아로 구성했다.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관문억제제인 바벤시오(아벨루맙)와 병용 투여할 예정이다.
이뮤노바이옴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항염증 치료제는 전임상을 진행 중이며 내년 중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뮤노바이옴은 마이크로바이옴의 작용기작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업체로 손꼽힌다.
임신혁 이뮤노바이옴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한계점은 특정 세균이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건 아는데, 그 기작을 알기 어려운 것”이라며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 정부들의 마이크로바이옴 투자는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발 빠르게 치고 나선 나라는 미국이다. 국립보건원(NIH) 주도하에 2007년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결성해 2013년까지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후 바통은 오바마 정부가 이어받았다. 2017년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NMI)’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출범해 기초연구와 인력양성 등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 4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이런 대규모 투자는 세레즈테라퓨틱스, 에이오바이옴, 비단타바이오사이언스 등 미국 기업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
유럽연합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큰 획을 그은 것을 인정받고 있다. ‘인간의 두 번째 게놈’은 마이크로바이옴을 두고 흔히 쓰는 말인데, EU에서 조직한 ‘인간 장내 메타게놈프로젝트(MetaHIT)’ 연구팀이 <네이처>에서 처음 사용했다. MetaHIT는 인간의 건강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에 집중한 프로젝트로, EU는 여기에 2100만 유로를 투입했다. MetaHIT 프로젝트는 장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개수(1000여 종),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 개수(200만~400만 개) 등 오늘날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기틀을 닦았다. 개인별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를 분석하는 방법론도 개발해 공개했다.
★한국
한국은 2011년 EU가 주도한 ‘국제 인간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IHMC)’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지원에 나섰다. 2017년엔 마이크로바이옴을 미래유망기술 분야로 선정하기도 했다. 관련 연구개발(R&D)에 242억6500만 원을 투자하겠다고 2016년 발표하기도 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SER-109의 임상 3상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환영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임상 3상이 ‘반쪽 성공’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구 제형으로 만든 것은 의미가 있지만 건강한 사람에게서 추출한 미생물의 포자를 섭취한다는 점에서 기존 분변이식(FMT) 시술과 기본 원리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작용기전(MoA)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SER-109의 약점으로 꼽힌다. 이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기업이 신약 개발을 위해 꼭 넘어야 할 허들이도 하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하게 밝히는 게 선결과제인 셈이다.
몸속 유익균의 재발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마이크로바이옴과 함께 살아간다. 당장 내 몸무게 중 1~3%가 내 살이 아닌 내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의 무게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내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약 1000종. 인간의 유전자는 2만여 개에 불과하지만 내 몸에 사는 미생물들의 유전자 개수를 합치면 200만~400만 개가 넘는다. 우리 몸은 이렇게 다양한 미생물과 때론 싸우고 도우며 상호작용하고 있다.마이크로바이옴 관련 논문도 급증하고 있다. 2013~2017년 5년 동안 마이크로바이옴을 주제로 한 논문은 약 1만2900건이었다. 이는 지난 40년 동안 나온 이 주제 논문 개수의 80%에 달하는 것이다. 관련 전 세계 특허 등록 수 역시 2006년 262개에서 2016년 2만1000개로 10년 사이 80배 증가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신약 개발이 한창인 까닭은 미생물이 우리 몸에서 끊임없이 대사와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질병 중 90%가 장내 미생물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다. 가령 ‘살 빠지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이 제품은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의 영양소 흡수에 관여하는 점을 이용했다. 지방세포의 분화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의 체중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장내 미생물의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물 대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세계 곳곳에서 마이크로바이옴과 약물을 병용 투여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이유다. 장내 미생물의 구성에 따라 항암제의 효과 정도가 달라진다. 또 장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 70%가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의 면역세포는 장내 미생물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피아(彼我)’를 학습하고 또 성숙해진다. 이런 점을 활용해 아토피 피부염이나 류머티즘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려는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장내 미생물이 만드는 다양한 화학물질도 연구자들 입장에선 풀어야 할 과제다. 어떤 화학물질은 장에 인접한 신경계를 자극해 뇌까지 영향을 준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자폐증 치료제는 이 맥락에서 나왔다.
2023년 세계 시장 1087억 달러로 급성장
전문가들은 2023년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규모가 108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이 추측한 같은 해 세계 항암제 시장 규모는 1940억 달러다. 앞으로 3년이면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이 항암제 시장의 절반 규모까지 성장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811억 달러를 기록한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규모는 연 7.6%씩 성장하고 있다.마이크로바이옴 신약과 관련된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시장 파이는 작다. 현재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의 90%는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가 차지하고 있다. 치료제가 아닌 건강기능식품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3억 달러. 시작은 아직 미미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장이 연 15~33% 속도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레즈테라퓨틱스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 SER-109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감염증은 항생제 사용으로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진 환자의 장내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유해균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이 이상 증식을 했을 때 생긴다. 지금까지 이 감염증으로 미국에서만 2만9000여 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세레즈테라퓨틱스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추출한 피르미쿠트종 박테리아를 혼합해 SER-109를 구성했다. 피르미쿠트는 흔히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테리아종이다. FDA는 SER-109를 혁신 치료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로 지정했으며, 의약품 허가를 받을 경우 세계에서 첫 번째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이 될 전망이다.
세레즈테라퓨틱스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SER-287도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SER-109처럼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분리한 표적 세균을 처리해 만든 치료제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전이성 흑색종 치료제 SER-401은 임상 1상 단계에 있다.
스위스 제약사 페링에 2018년 인수된 미국 바이오기업 리바이오틱스 또한 클로스트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 RBX-7455의 임상 3상을 최근 마쳤다. 임상 3상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RBX-7455 또한 SER-109와 마찬가지로 경구 투여 방식의 치료제다.
미국 비단타사이언스 또한 경구 투여할 수 있는 제형의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VE303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의 군락 형성을 막는 인간 유래 박테리아 균주 8종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구성했다. 임상 2상 결과는 올해 중에 나온다.
해외 마이크로바이옴 스타트업들의 신약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에 집중되고 있는 까닭은 이 감염증의 치료법이 FMT와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다. 매번 건강한 기증자로부터 기증받는 게 아니라 균을 균일화할 수 있으니 안전성 면에서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신약 개발의 다양성, 꾸준히 확장 중
이 외에도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도 개발되고 있다. 비단타사이언스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VE800은 고형암을 타깃으로 하는 면역항암 후보물질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면역관문억제제 옵디보(성분 니볼루맙)와의 병용요법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인간 유래 미생물 11종으로 구성한 치료제로 CD8+ T세포를 유도해 면역체계가 종양을 공격하도록 하는 원리다. 내년 중 임상 1상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미국 오셀도 미생물로 미생물을 견제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의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오셀은 자사의 세균성 질염 치료제 LACTIN-V가 임상 2b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5월 발표했다. 오셀 관계자는 “2b상 시험에서 위약에 비해 세균성 질염의 재발을 크게 줄였다”고 했다.
LACTIN-V는 질을 보호해주는 세균 균주 ‘락토바실러스 크리스파투스 CT V-05’를 함유한 국소투여형 치료제다. 이 관계자는 “세균성 질염의 경우 항생제가 거의 유일한 치료제이지만 재발률이 높은 게 문제였다”며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는 질내 미생물 생태계를 정상화해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기업 에이오바이옴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아토피 피부염 치료 후보물질 B244가 임상 2a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경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성인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얻은 결과다. B244는 암모니아 산화세균 유익균을 스프레이 제형으로 만든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다. 에이오바이옴은 임상 참여자를 성인 576명으로 늘려 임상 2b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서도 신약 개발 본격화
국내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항암 치료나 면역질환 치료, 중추신경계 관련 질환 치료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천랩은 고형암에 대응할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상재균(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세균)인 CLCC1을 활용해 개발한 것으로 간암 동물 모델에서 종양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 내년 임상 1상 돌입이 목표다.
고바이오랩은 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KBL697은 특정 장내 미생물이 면역세포인 T세포의 분화와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특성을 이용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T세포의 과잉활동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한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동하면서 우리 몸의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지놈앤컴퍼니는 올해 미국에서 면역항암 치료제 GEN - 001의 임상 1상을 시작했다. GEN-001은 건강한 기증자의 장에서 분류한 수지상세포, 대식세포, T세포 등의 반응을 활성화는 기능이 입증된 단일 계통 박테리아로 구성했다.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관문억제제인 바벤시오(아벨루맙)와 병용 투여할 예정이다.
이뮤노바이옴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항염증 치료제는 전임상을 진행 중이며 내년 중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뮤노바이옴은 마이크로바이옴의 작용기작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업체로 손꼽힌다.
임신혁 이뮤노바이옴 대표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한계점은 특정 세균이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건 아는데, 그 기작을 알기 어려운 것”이라며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바이옴 헤게모니 세계대전
★미국세계 각국 정부들의 마이크로바이옴 투자는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발 빠르게 치고 나선 나라는 미국이다. 국립보건원(NIH) 주도하에 2007년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를 결성해 2013년까지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이후 바통은 오바마 정부가 이어받았다. 2017년 ‘국가 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NMI)’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출범해 기초연구와 인력양성 등 연구 인프라 구축을 위해 4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이런 대규모 투자는 세레즈테라퓨틱스, 에이오바이옴, 비단타바이오사이언스 등 미국 기업이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
유럽연합 또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큰 획을 그은 것을 인정받고 있다. ‘인간의 두 번째 게놈’은 마이크로바이옴을 두고 흔히 쓰는 말인데, EU에서 조직한 ‘인간 장내 메타게놈프로젝트(MetaHIT)’ 연구팀이 <네이처>에서 처음 사용했다. MetaHIT는 인간의 건강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연관성에 집중한 프로젝트로, EU는 여기에 2100만 유로를 투입했다. MetaHIT 프로젝트는 장내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개수(1000여 종),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 개수(200만~400만 개) 등 오늘날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기틀을 닦았다. 개인별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를 분석하는 방법론도 개발해 공개했다.
★한국
한국은 2011년 EU가 주도한 ‘국제 인간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IHMC)’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지원에 나섰다. 2017년엔 마이크로바이옴을 미래유망기술 분야로 선정하기도 했다. 관련 연구개발(R&D)에 242억6500만 원을 투자하겠다고 2016년 발표하기도 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