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온통 'CHINA'로 뒤덮인 나이키…中수입박람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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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조원 흔들며 글로벌 기업들 줄 세우기…거대 시장 무기화
'자유무역 수호자' 자청하지만 호주처럼 틀어지면 '경제적 징벌' 중앙에 역동적으로 배치된 10여개 마네킹은 모조리 중국을 뜻하는 'CHINA'(중국)라는 영어 글자가 새겨진 붉은 농구복을 입고 있었다.
중국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농구복 가장자리에 작게 새겨진 로고를 보지 못했다면 이곳이 미국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의 전시관인 것을 모르고 지날 뻔했다.
CHINA라는 이미지로 정작 행사를 통해 알려야 할 자사 이미지를 덮은 기묘한 전시장 구성 방식은 미중 갈등이 신냉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민감하게 여겨질 수 있는 미국 브랜드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고육지책인 듯했다.
5일 중국 상하이 훙차오(虹橋)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개막한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장의 나이키 전시관 모습에서 미중 신냉전 속에서도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기업들의 고심을 엿볼 수 있었다.
◇ 손에 돈다발 쥐고 묻는 중국…"너는 어느 편인가" 중국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미국프로농구(NBA)도 수입박람회장 소비상품 구역에 800㎡에 달하는 대형 전시관을 꾸렸다.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에서는 지난 1년간 NBA 경기 중계를 중단됐다가 지난달 10일 2019-2020시즌 챔피언 결정전이 생중계되는 등 일부 '사면' 조짐이 보인다.
중국에서 방송 중계권과 스포츠 용품 등을 판매하고자 하는 NBA 처지에서는 중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수입박람회 참여를 통해 적극적인 시장 참여 의지를 당국에 보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NBA차이나 홍보 담당자 류숴(劉爍)씨는 "미중 갈등 상황과 관련해 회사 입장을 대표해 말할 순 없지만 NBA는 중국과 미국의 수교한 역사적인 1979년에 중국에 진출해 청소년 농구 교육 등으로 중국의 농구 발전에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축구장 54개에 해당하는 33만㎡ 면적의 거대한 박람회장에서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차이나 머니'의 힘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면서 미중 갈등 속에서 과연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묻는 듯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매년 11월 수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자국에서 장사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 수천곳을 거대한 규모의 전시회장에 결집시킴으로써 자국의 구매력을 안팎에 과시하는 체제 선전전을 벌이는 것이다.
중국이 이번 수입박람회를 통해 풀 것으로 예상되는 돈은 작년 2회 행사 때의 711억 달러(약 80조5천억원)에 필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식료품에서부터 완구, 생활용품, 자동차, 첨단 IT 제품, 패션 명품을 파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모여들었다.
미국 회사인 포드, GM, 테슬라를 포함해 현대기아차, 도요타, 폴크스바겐, 벤츠, BMW 등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한 자동차 전시 구역 규모는 웬만한 국제 대형 모터쇼 규모에 필적했다.
신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선진국 시장에서 패션 명품 판매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구찌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라이벌 명품 브랜드 그룹 케링과 카르티에를 거느린 리치몬트 그룹, 돌체 앤 가바나 등 명품 업체들도 일제히 화려한 전시장을 꾸려 중국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 스스로 신뢰 깎는 중국…자유무역 외치면서 툭하면 수입제한
중국은 수입박람회를 자국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외교 무대로 활용하려고 한다.
특히 미국이 외교·안보와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포위·압박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구매력은 세계 각국이 섣불리 미국 편에 일방적으로 서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중국은 또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동맹국까지 포함한 타국에 무차별인 통상 압력을 가하는 미국에 대한 성토 여론을 조성하고 자국을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포장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내부 선전에는 큰 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도 관계가 틀어진 국가의 상품 수입을 중단하는 식으로 '경제적 징벌'을 가하는 일이 잦다.
툭하면 '경제 몽둥이'를 휘둘러 상대방 국가를 굴복시키려는 중국 거친 통상외교 관행은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는 데 가장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중국이 최근 수입박람회를 앞두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라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와중에서도 호주가 중국의 수입 제한 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앞서 호주산 석탄과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목재와 보리도 수입까지 중단했다.
중국은 호주의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이런 조치는 호주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행위다.
중국이 호주에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호주는 코로나19 책임론 등을 놓고 중국과 외교적으로 불편한 사이다.
호주는 반중 동맹 성격의 '쿼드'(Quad) 4개국 협의체에도 참여하고 있다.
호주가 겪는 어려움은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와중에 중국은 단체 여행을 전면 중지시켰고 비공식 한한령(限韓令)을 통해 드라마·영화·가요·공연 등 문화 산업과 게임 산업에도 큰 타격을 가했다.
이후 한중 관계 회복이 도모되면서 제재가 일부 완화되는 조짐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영화 방영, 연예인들의 현지 공연 개최, 게임 판호 발급 등 사실상 거의 모든 핵심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엔 노르웨이 연어가,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의 체포 이후엔 캐나다 농산물이 또 중국의 수입 제한 표적이 됐다.
◇ 수입박람회, 실질 수입 증대 효과 회의론도 이런 가운데 수십조원을 푼다는 수입박람회가 중국의 체제 선전에 활용될 뿐이지 실제로는 해외 기업들의 획기적인 수출 증대 효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비판론도 나온다.
2018년과 2019년 1∼2회 수입박람회 때 중국은 각각 578억 달러와 71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구매 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지만 수입박람회와 특별히 관련 없는 일반 수출액도 수입박람회 실적 올리기 차원에서 합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또 여기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업무협약(MOU) 단계 논의액도 다수 포함돼 실제 계약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작년 2회 수입박람회 때 체결한 MOU 내용이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중국에서 탄탄한 판매 채널을 가진 대기업들은 일회성 행사인 수입박람회에 참여한다고 매출이 많이 늘어나지는 않지만 중국 당국에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로이터 통신은 "박람회가 외국 상품 수입에 초점이 맞춰지기는 했지만 비판론자들은 수출 위주의 중국 무역 관행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고 행사의 의의를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
'자유무역 수호자' 자청하지만 호주처럼 틀어지면 '경제적 징벌' 중앙에 역동적으로 배치된 10여개 마네킹은 모조리 중국을 뜻하는 'CHINA'(중국)라는 영어 글자가 새겨진 붉은 농구복을 입고 있었다.
중국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농구복 가장자리에 작게 새겨진 로고를 보지 못했다면 이곳이 미국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의 전시관인 것을 모르고 지날 뻔했다.
CHINA라는 이미지로 정작 행사를 통해 알려야 할 자사 이미지를 덮은 기묘한 전시장 구성 방식은 미중 갈등이 신냉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민감하게 여겨질 수 있는 미국 브랜드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고육지책인 듯했다.
5일 중국 상하이 훙차오(虹橋)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개막한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장의 나이키 전시관 모습에서 미중 신냉전 속에서도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기업들의 고심을 엿볼 수 있었다.
◇ 손에 돈다발 쥐고 묻는 중국…"너는 어느 편인가" 중국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미국프로농구(NBA)도 수입박람회장 소비상품 구역에 800㎡에 달하는 대형 전시관을 꾸렸다.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에서는 지난 1년간 NBA 경기 중계를 중단됐다가 지난달 10일 2019-2020시즌 챔피언 결정전이 생중계되는 등 일부 '사면' 조짐이 보인다.
중국에서 방송 중계권과 스포츠 용품 등을 판매하고자 하는 NBA 처지에서는 중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수입박람회 참여를 통해 적극적인 시장 참여 의지를 당국에 보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NBA차이나 홍보 담당자 류숴(劉爍)씨는 "미중 갈등 상황과 관련해 회사 입장을 대표해 말할 순 없지만 NBA는 중국과 미국의 수교한 역사적인 1979년에 중국에 진출해 청소년 농구 교육 등으로 중국의 농구 발전에 꾸준히 노력해왔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축구장 54개에 해당하는 33만㎡ 면적의 거대한 박람회장에서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차이나 머니'의 힘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면서 미중 갈등 속에서 과연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묻는 듯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매년 11월 수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자국에서 장사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 수천곳을 거대한 규모의 전시회장에 결집시킴으로써 자국의 구매력을 안팎에 과시하는 체제 선전전을 벌이는 것이다.
중국이 이번 수입박람회를 통해 풀 것으로 예상되는 돈은 작년 2회 행사 때의 711억 달러(약 80조5천억원)에 필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식료품에서부터 완구, 생활용품, 자동차, 첨단 IT 제품, 패션 명품을 파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모여들었다.
미국 회사인 포드, GM, 테슬라를 포함해 현대기아차, 도요타, 폴크스바겐, 벤츠, BMW 등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한 자동차 전시 구역 규모는 웬만한 국제 대형 모터쇼 규모에 필적했다.
신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선진국 시장에서 패션 명품 판매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구찌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라이벌 명품 브랜드 그룹 케링과 카르티에를 거느린 리치몬트 그룹, 돌체 앤 가바나 등 명품 업체들도 일제히 화려한 전시장을 꾸려 중국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 스스로 신뢰 깎는 중국…자유무역 외치면서 툭하면 수입제한
중국은 수입박람회를 자국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외교 무대로 활용하려고 한다.
특히 미국이 외교·안보와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포위·압박하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구매력은 세계 각국이 섣불리 미국 편에 일방적으로 서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중국은 또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동맹국까지 포함한 타국에 무차별인 통상 압력을 가하는 미국에 대한 성토 여론을 조성하고 자국을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포장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내부 선전에는 큰 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하면서도 관계가 틀어진 국가의 상품 수입을 중단하는 식으로 '경제적 징벌'을 가하는 일이 잦다.
툭하면 '경제 몽둥이'를 휘둘러 상대방 국가를 굴복시키려는 중국 거친 통상외교 관행은 중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여기는 데 가장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중국이 최근 수입박람회를 앞두고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라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와중에서도 호주가 중국의 수입 제한 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앞서 호주산 석탄과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목재와 보리도 수입까지 중단했다.
중국은 호주의 최대 수출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이런 조치는 호주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행위다.
중국이 호주에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호주는 코로나19 책임론 등을 놓고 중국과 외교적으로 불편한 사이다.
호주는 반중 동맹 성격의 '쿼드'(Quad) 4개국 협의체에도 참여하고 있다.
호주가 겪는 어려움은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와중에 중국은 단체 여행을 전면 중지시켰고 비공식 한한령(限韓令)을 통해 드라마·영화·가요·공연 등 문화 산업과 게임 산업에도 큰 타격을 가했다.
이후 한중 관계 회복이 도모되면서 제재가 일부 완화되는 조짐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영화 방영, 연예인들의 현지 공연 개최, 게임 판호 발급 등 사실상 거의 모든 핵심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엔 노르웨이 연어가,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부회장의 체포 이후엔 캐나다 농산물이 또 중국의 수입 제한 표적이 됐다.
◇ 수입박람회, 실질 수입 증대 효과 회의론도 이런 가운데 수십조원을 푼다는 수입박람회가 중국의 체제 선전에 활용될 뿐이지 실제로는 해외 기업들의 획기적인 수출 증대 효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비판론도 나온다.
2018년과 2019년 1∼2회 수입박람회 때 중국은 각각 578억 달러와 71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구매 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지만 수입박람회와 특별히 관련 없는 일반 수출액도 수입박람회 실적 올리기 차원에서 합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또 여기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업무협약(MOU) 단계 논의액도 다수 포함돼 실제 계약액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작년 2회 수입박람회 때 체결한 MOU 내용이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중국에서 탄탄한 판매 채널을 가진 대기업들은 일회성 행사인 수입박람회에 참여한다고 매출이 많이 늘어나지는 않지만 중국 당국에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로이터 통신은 "박람회가 외국 상품 수입에 초점이 맞춰지기는 했지만 비판론자들은 수출 위주의 중국 무역 관행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고 행사의 의의를 평가절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