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먹는 약이나 주사제 대신 소프트웨어(SW)만으로 질병을 치료하겠다는 획기적인 모바일 앱 ‘리셋(reSET)’을 2017년 허가했다. 리셋의 허가를 시작으로 게임이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렸다.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의료기기에도 이런 신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신기술 덕분에 질병 진단과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데 그쳤던 의료기기의 범위가 장애나 질병의 예방 및 관리, 치료 분야까지 넓어졌다. 이처럼 신기술이 접목된 SW 형태의 의료기기를 디지털 치료기기(일명 디지털 치료제)라고 부른다.

[이슈 하이라이트 part.3]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가이드라인…어떤 내용일까
해외시장조사 전문기관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글로벌 시장이 2018년도 2조6000억 원에서 2022년도에는 총 11조 8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시장 규모도 2017년도 1조900억 원에서 2023년도 5조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신약과 비교했을 때 개발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개발기간 역시 신약 대비 최대 10년가량 짧다는 점이다. 비용대비 효과가 매우 크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대다수의 디지털 치료기기는 주로 인지행동치료 분야에 집중돼 있으며, 암·뇌졸중 환자에 대한 예후 및 만성질환 환자의 관리·예방 분야에서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물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앱인 리셋을 시작으로, 지난 6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를 치료하는 모바일 게임이 추가로 FDA의 허가를 받았다.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가이드라인, 왜 필요한가

국내에서도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디지털 치료기기가 허가된 바 없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첫 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받은 사례는 있다. 지난해 6월 뉴냅스가 뇌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 디지털 치료기기 ‘뉴냅비전’으로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에 맞는 의료기기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또 하드웨어(HW) 중심의 정형화된 의료기기에서 SW중심의 의료기기로 개발이 확대됨에 따라 이런 제품들이 의료기기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가릴 기준이 필요해졌다. 만약 의료기기에 해당돼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임상적 유효성이나 성능을 어떻게 입증하며, 허가 이후 제품의 변경이 발생하면 변경 허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시 필요했다.

식약처는 2019년 11월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을 희망하는 5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73%의 기업이 올해 디지털 치료기기 인허가 계획이 있으며, 인허가 시 어려운 점으로는 제품의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시험과 기술문서 등 허가 문서 작성을 꼽았다. 식약처는 이를 바탕으로 신속제품화에 도움을 주고자 올해 초부터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을 시작해 지난 8월 말 세계 최초로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시 필요한 항목

디지털 치료기기의 허가를 신청할 때 필요한 신청서 작성 시 고려해야 하는 기재항목으로는 작용 원리, 성능, 사용 목적, 사용 시 주의사항, 시험 규격이다.

➊ 작용 원리는 디지털 치료기기의 사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용된 과학적 또는 임상적 원리를 작성해야 한다.

➋ 성능은 SW의 운영환경과 HW 요구사항, 주요기능을 작성해야 한다.

➌ 사용 목적은 치료, 예방, 관리의 대상 질병과 대상 환자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❹ 사용 시 주의사항은 해당 제품을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최신의 안전 사항을 작성한다.

❺ 시험 규격은 제품이 발휘하는 주요 성능과 환자의 의료정보를 다른 장비로 송수신하는 등 통신을 할 경우, 데이터 암호화를 포함한 시험항목, 시험기준, 시험 방법을 작성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의료기기 허가를 신청할 때 제출하는 첨부자료 중 작용원리 자료, 성능 자료, 임상시험 자료는 특히 눈여겨 봐야 한다. 작용원리에 관한 자료는 해당 제품의 사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환자에게 과학적 또는 임상적 근거가 어떻게 적용돼 구현되는지를 설명한 자료다.

성능에 관한 자료는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 등에 관한 규정’ 별지 제13호 서식에 따른 SW 적합성 확인보고서와 SW 검증 및 유효성 확인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해당 제품이 유·무선 통신기능이 있는 경우에는 사이버 보안 관련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상시험은 반드시 전향적으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 또 작용원리에 대한 근거자료가 없을 경우에는 탐색 임상시험을 통해 임상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허가 이후에도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돼 수집된 정보나 자료를 바탕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근거자료도 필요하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가르는 기준 3가지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 치료기기의 정의, 판단 기준, 허가를 위한 기술문서 작성 시 고려해야 할 기재항목과 첨부자료의 안내다. 식약처가 정의하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의 예방, 관리,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SW 의료기기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처방 대상은 예방, 관리 등 치료적 개입이 필요한 환자로 제한한다. 반드시 제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질병의 치료 목적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치료 목적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은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크게 대체제품과 보완제품으로 구분한다.

대체제품은 단독으로 사용해도 직접적인 치료 효과가 있고, 기존 치료제나 치료기기와 병행하면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제품이다. 반면 보완제품은 독립적인 치료 효과가 없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기존 치료제나 치료기기와 병용해 치료 효과 향상을 지원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디지털 치료기기는 SW 의료기기에 해당해야 한다. SW는 PC, 모바일 제품, 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HMD) 등 범용(공산품) HW에 설치해 사용할 수 있다.

둘째, SW 의료기기에 해당된다면 질병을 예방, 관리 또는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환자에게 적용해야 한다. 여기서 질병 대상의 적용 범위는 국제질병분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해당해야 한다.

셋째, 치료 작용기전에 대한 과학적 또는 임상적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료 작용기전에 대한 과학적 또는 임상적 근거의 종류는 대한의학회에서 인정한 임상진료지침(CPG·Clinical Practice Guideline)이나 전문가 검토를 통해 출판하는 학술지에 게재된 임상논문 또는 탐색 임상시험이나 연구자 임상시험 자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료여야 한다.

허가 가이드라인, 시장 활성화 이끌까

디지털 치료기기의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은 그간 제품 개발에 있었던 혼선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제품이 신속하게 개발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이로써 병원 방문이 어렵거나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보건향상은 물론 치료비의 절감을 가져올 것이다.

디지털 헬스기기 개발업체들은 주로 스타트업 업체이고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본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임상시험이나 허가 자료 마련 등에서 전문 컨설팅을 받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 심사 가이드라인은 의료기기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업체들에게 개발 제품의 사업화 모델을 정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중요한 절차나 방법을 예측 가능한 방안으로 제시함으로서 제품 개발의 시행착오에 따른 개발 시간과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식약처의 의료기기 허가 이후에도 의료기관에서의 사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건강보험급여 지원이 된다면 디지털 치료기기 제품들이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