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찰스 라이스 교수, 하비 올터 박사, 마이클 호턴 교수
(왼쪽부터) 찰스 라이스 교수, 하비 올터 박사, 마이클 호턴 교수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만성 간염의 대표적인 원인인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하비 올터 박사, 마이클 호턴 교수, 찰스 라이스 교수 3명에게 수여됐다. 간염 바이러스로는 이번이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 그 발견에 대한 공로로 1976년 사무엘 블룸버그 박사가 수상했다.

간염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특히 중요한 이유는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 모두 만성 간염의 대표적인 원인이며 둘 다 간암을 일으키는 종양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하비 올터 박사, 마이클 호턴 교수, 찰스 라이스 교수 3명을 포함해서 총 5명이 이미 예비 노벨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라스커상을 수상한 바 있어 이들에 대한 노벨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번 수상이 매우 예상 밖이라고 하지만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바이러스 분야에 노벨상이 수상된다면 그건 아마도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어쩌면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바이러스 연구자가 적고 더군다나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자는 더더욱 적다보니 C형 간염에 대한 연구 성과와 의미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이번 수상이 놀라웠던 것 같다.

만성 간염의 원인으로서 C형 간염 바이러스

사람에게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총 5가지가 알려져 있다. A, B, C, D, E형 간염 바이러스다. 5가지 바이러스 모두 비슷하게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처럼 보이나 실제 바이러스 분류상 이들은 모두 서로 상이하다. 만성 간염은 B형 및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서 발생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등지에서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가장 주된 만성 간염의 원인인 반면 북미와 유럽 그리고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C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만성 간염의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와는 달리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은 상당수의 경우(약 70%)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며 이후 오랜 기간을 거쳐 간경변과 간암으로 까지 진행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약 7100만 명이 만성 C형 간염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6년도에만 C형 간염이 더 악화돼 발생한 간경변, 간암으로 39만9000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매우 치명적인 C형 간염은 처음에는 이미 이전에 밝혀진 A형도 아니고 B형도 아닌 새로운 간염으로 불리며 1970년대 중반 하비 올터 박사에 의해서 발견됐다. 이후 1989년 당시 미국 제약회사 카이론에 있었던 마이클 호턴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C형 간염의 원인으로 플라비 바이러스과로 분류할 수 있는 새로운 바이러스인 C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Focus ❶노벨생리의학상]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연구

마이클 호턴 박사 연구팀에 의한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 이후 전 세계 많은 연구자들이 이 바이러스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C형 간염은 거의 완치될 수 있는 감염병이 됐다. 바이러스 발견 이후 20~30년 만에 거둔 성과로서 특히 만성 바이러스 감염병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인류 역사상 완치 가능한 질병이라는 점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아직까지도 백신은 여러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발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과거 20~30년 동안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와 관련해서 여러 괄목할 만한 과학적 진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언급할 만한 것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레플리콘 시스템 개발이다. 레플리콘이란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DNA 혹은 RNA를 가리킨다. 레플리콘의 개발은 바이러스의 게놈 복제를 세포 배양을 통해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 연구뿐만 아니라 치료제 등의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양성 가닥의 RNA를 유전자로 사용하는 RNA 바이러스로서 다른 여러 바이러스와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간암 세포주 등에 집어넣었을 때 바이러스 복제 과정을 재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대다수의 바이러스는 음성 RNA를 주형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보니 바이러스 게놈 복제에 대한 연구는 바이러스의 개별 단백질을 따로 과발현함으로써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 연구해야만 했고, 결국 복제 과정을 온전히 세포 내에서 재현하지 못해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도 더뎠다. 바이러스의 게놈 복제 과정을 온전히 재현할 수 있는 레플리콘 시스템이 개발되고 나서야 바이러스 생활사 중 가장 중요한 게놈 복제 과정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 후 약 10년 뒤에 개발된 레플리콘 시스템은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를 상당히 진보시켰으나 여전히 세포 배양을 통한 바이러스 전체 생활사는 재현할 수가 없었다. 즉, 레플리콘 시스템은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생활사 초기 단계인 바이러스의 숙주 세포 진입과 생활사의 마지막 단계인 숙주 세포 내에서의 바이러스 입자 조립 및 방출 과정을 재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레플리콘 개발 후 약 5년 뒤인 2005년에야 비로소 바이러스 전체 생활사를 재현할 수 있는 독특한 바이러스가 일본 연구진에 의해 분리됐다(JFH-1). 이로써 C형 간염 바이러스의 전체 생활사를 세포 배양을 통해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또 후속 연구들에 의해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복제가 일반적인 세포 배양을 통해 구현이 어려웠던 이유도 속속 밝혀지게 됐다.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 결과는 단지 이 특정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C형 간염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양성 가닥 RNA를 유전자로 가지고 있는 뎅기 및 지카 바이러스 등 다른 RNA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혔을 뿐만 아니라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이용한 선천면역 연구 등 관련 학문 분야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C형 간염 치료법의 발전

C형 간염의 원인 바이러스가 발견됨과 동시에 C형 간염의 치료는 다양하게 시도됐다. 처음에는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인터페론을 사용했으나 치료율은 매우 미미했다. 치료율을 높이기 위해 인터페론 외에 리바비린을 병용하는 치료법이 시도됐고 뒤이어 폴리에틸렌글라이콜(PEG)을 붙인 인터페론(페그인터페론)과 리바비린의 병용 치료법이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됐다.

그러나 장기간 동안 인터페론 주사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과 인터페론에 의한 부작용 때문에 C형 간염 환자가 치료 과정을 온전히 마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록 치료율은 초기 인터페론 단독 치료보다는 점진적으로 향상됐지만 가장 대표적인 제1 유전자형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율은 여전히 50% 미만에 머물렀다.

이즈음 낮은 치료율과 인터페론의 부작용 때문에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가 다국적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바이러스의 단백질 분해 효소(NS3)를 타깃으로 하는 항바이러스제와 RNA 복제 효소(NS5B)를 저해하는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이 매우 활발했다. 또 레플리콘을 활용한 저분자 화합물의 스크리닝을 통해 발굴한 NS5A 단백질 저해물질의 개발도 동시에 진행됐다.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중에서 최초로 승인받고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바이러스 단백질 분해 효소를 저해하는 텔라프레비르와 보세프레비르였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이들 항바이러스제는 단독으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페그인터페론 및 리바비린과 함께 사용하는 병용 치료였다.

경구용 항바이러스제가 도입되면서 치료율은 더욱 향상되기 시작해 현재는 인터페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구용 항바이러스제의 병합 치료만으로도 95% 이상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라스커상을 수상하기도 한 마이클 소피아가 개발한 소포스부비르는 RNA 복제 효소를 저해하는 활성을 가지면서 C형 간염의 치료율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는 다클라타스비르(NS5A 저해제)와 아수나프레비르(단백질 분해 효소 저해제)다. 두 가지 약물의 병용 치료는 2015년도부터 국내 C형 간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Focus ❶노벨생리의학상]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그 특별한 의미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한 명으로서 올해 이 분야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수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서술한 대로 C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 바이러스의 발견부터 완치 가능한 치료제 개발까지 20~30년의 기간이 걸렸다. 인류의 감염병 관련 역사상 이렇게 독보적인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묵묵히 연구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를 정복했듯이 현재의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바이러스 연구자들의 국제적인 공조와 노력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고 생각되며 많은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자들의 기여가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