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코로나19 대응 약물 재창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한경DB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코로나19 대응 약물 재창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한경DB
최근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임상에서 안전성 이외의 이유로 실패한 약물 또는 시판 중인 약물에 대해 새로운 의약 용도를 찾는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이 주목 받고 있다.

약물 재창출은 비임상 및 임상 단계에서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약물에 대해 새로운 약효를 찾아내는 것이다. 신약 후보 발굴 과정 및 안전성 평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에 기인한 임상 실패 확률이 낮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

특히 코로나19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20년 3월에 팬데믹으로 선포된 이후 지난 9월 기준 전 세계 누적 사망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임상 2상부터 바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한 약물 재창출은 중요한 약물 개발 전략 중 하나가 됐다.

약물 재창출 시 원천특허 여부 반드시 살펴봐야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는 에볼라 치료제로서 개발하다가 MSD, 존슨앤드존슨 등 경쟁사의 약물에 비해 효과적이지 않아 임상이 중단됐던 약물이다. 이후 2020년에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를 새로운 적응증으로 지정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에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제로 약물 재창출을 시도하고 있는 약물에는 말라리아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은 신풍제약의 피라맥스, 만성B형 간염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은 부광약품의 레보비르 등이 있다.

하나의 약물이 하나의 타깃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타깃도 조절할 수 있으며, 하나의 타깃이 하나의 적응증 외에 다른 적응증에도 관여할 수 있다. 약물 재창출은 새로운 적응증을 탐색해 개발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다만 특허의 관점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기존 약물에 대해 새로운 적응증으로 임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더라도, 판매 시점에서 기존 약물의 원천 특허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면 원천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거나 원천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판매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약물 재창출에서 원천특허와 용도특허의 관계는 반드시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하는 요소다.

원천특허인지 여부는 일반적으로 활성성분(API·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 및 의약 용도를 중심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몇몇 사례를 가정하여 살펴보자.

‘A를 활성성분으로 포함하는, B 치료용 조성물’이 청구항에 기재돼 등록된 특허의 경우, 후발주자가 새로운 적응증 C에 대해 A를 사용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은 침해가 아니므로 선등록특허는 원천특허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적응증 C와 활성성분 A의 관계가 선행기술로부터 신규성 및 진보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후발주자는 용도 특허를 등록받을 수 있다.

‘활성성분 A’가 용도의 한정 없이 물질 자체로서 등록되는 특허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가 원천특허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된다. 대표적으로 플랫폼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에피노페그듀타이드(HM12525A)’는 얀센에서 비만 및 당뇨 치료제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임상 2상이 중단되면서 라이선싱 계약이 해지됐다. 하지만 그 후 새로운 적응증 비알코올성 지방 간염(NASH)에 대해 MSD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같이 적응증을 달리해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약효 지속시간을 늘려주는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에 대해 용도가 한정돼 있지 않은 원천특허를 한미약품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균·저분자의약품, 의도치 않게 특허 침해할 수 있어

새롭게 발견한 균을 기탁하면서 균 자체를 등록받은 특허가 존재한다면, 후발주자는 균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고 용도특허를 확보했더라도 균의 상업적 사용은 원천특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특허는 활성성분으로서 저분자의약품의 화학구조를 일반식으로 등록받는 편이 많으므로, 저분자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은 의도치 않게 원천특허를 침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용도를 한정하지 않고 일반화학식으로 등록돼 있는 원천 특허를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약물에서 알려지지 않은 적응증을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모달리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가 신약 개발의 비용 및 기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가 약물 재창출이다. 자사 보유 원천특허가 있는 경우에는 새로운 적응증을 용도특허로 확보하면서 특허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구축해나갈 수 있다. 원천특허가 타사에 있는 경우, 새로운 적응증으로 개발한 약물의 판매 시점에서 원천특허가 소멸한다면 적극적으로 약물 개발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원천특허의 존속기간이 유효하게 지속된다면 원천특허권자와의 협력을 다양하게 고려해볼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새로운 적응증은 용도 특허로 보호받고 있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김정현 변리사의 특허법률백서] 약물 재창출에서 주의해야 할 원천특허의 존재
김정현 특허법인 아이피센트 대표변리사

고려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2007년부터 제약·바이오·화장품·건강기능식품 분야 전문 변리사로 활동 중이다. 특허법인 코리아나, 특허법인 오리진, 미리어드IP를 거쳐 현재 특허법인 아이피센트 대표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