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롯데(유통 BU)와 신세계(이마트)가 그런 경우다. 유통가의 오랜 맞수인 두 그룹이 이번엔 ‘데이터 전쟁’의 선봉장으로 서울대 수학과 출신을 나란히 내세워 이목을 끌고 있다.

'롯데 vs 신세계' 데이터 전쟁…서울대 수학과 동문 진검승부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양사가 데이터 전략을 책임지는 자리를 만든 건 지난 10월 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강희석 이마트 대표에게 SSG닷컴 대표를 겸직토록 하면서 SSG닷컴 내에 데이터·인프라 본부를 신설했다.

초대 본부장엔 장유성 전무(사진·50)가 임명됐다. 장 전무는 세계적인 자연어 기반 지식 엔진인 ‘울프램 알파’의 창립 멤버다. 울프램 알파는 삼성전자 빅스비와 애플 시리에 AI(인공지능) 기반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장 전무는 신세계에 합류하기 전 SK텔레콤에서 모빌리티 사업단장 등을 맡아 인공지능 서비스를 기획했다.

'롯데 vs 신세계' 데이터 전쟁…서울대 수학과 동문 진검승부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롯데도 비슷한 시기에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부회장) 직속으로 데이터 거버넌스 태스크포스팀으로 만들었다. 최고데이터책임자(CDO) 자리도 신설해 여기에 롯데정보통신에 있던 윤영선 상무(사진·47)를 앉혔다.

흥미로운 점은 윤 상무와 장 전무가 서울대 수학과 동문이라는 것이다. 윤 상무가 끝까지 수학으로 예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장 전무는 서울대에서 수학 석사를 받은 다음, 뉴욕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비슷한 이력의 전문가를 뽑긴 했지만, 신세계와 롯데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약간 다르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신세계는 강희석 대표가 그랬듯이, 외부 출신에 데이터 총괄을 맡겼다. 정 부회장이 이마트와 SSG닷컴의 통합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만큼, 장 전무는 상당한 권한을 갖고 신세계만의 온·오프라인 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AI 알고리즘 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윤 상무는 2018년 5월부터 롯데정보통신에서 일해 온 ‘롯데맨’이다. 그룹 사정을 잘 알고 있는터라 그의 역할은 쇼핑 내 여러 사업부에 ‘데이터 DNA’를 심고, 데이터와 관련된 전략을 기획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윤 상무는 강희태 부회장이 롯데쇼핑 내에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데려온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기초 설계가 윤 상무의 임무라는 얘기다.

유통업계의 데이터 경쟁은 쿠팡이 촉발시켰다. 건물에 비유하면 쿠팡은 ‘맨땅’에 건물을 지을 때부터 데이터 수집, 분석, 활용에 처음부터 방점을 찍었다. 쿠팡의 데이터를 책임지는 후이쉬(Hui Xu)는 중국 칭화대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미네소타대학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쿠팡에 오기 전 그의 직장은 구글, 핀터레스트 등이었다. 최근엔 우버 출신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했다.

신세계백화점는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데이터사이언스를 전공한 4명을 올해 처음으로 뽑았다. 대리, 과장급이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백화점 마케팅과 관련해 데이터를 접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데 점포 내 카페테리아에 내방객이 머무는 시간과 점포 매출의 상관관계를 데이터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식이다.

유통업체 뿐만 아니라 소비재 기업들 대다수가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의 실적 악화를 타개할 묘책으로 ‘빅데이터’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외이사에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을 선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차 원장은 “데이터 전략은 단순히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인사에 관한 문제”라며 “데이터 분석가들을 조직에 안착시킬 수 있는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