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벤처펀드 '매칭 대란' 부른 정부의 과욕
“펀드는 어떻게든 만들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지난 6일 정부의 모태펀드 결성을 막 끝낸 한 벤처캐피털(VC) 운용사 대표는 기자의 축하한다는 전화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올초 정부는 1조800억원을 출자해 민간 자금을 합쳐 총 2조48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는 사업을 발표했다. 이 운용사를 포함해 81개사가 선정됐다. VC업계에 따르면 일부 대형사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형 운용사들은 6개월의 펀드 결성 기한인 지난 주말에야 간신히 목표액을 채웠다.

주관 부서인 중소벤처기업부와 모태펀드 총괄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는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의 출자가 연말에 이뤄지면 모든 펀드가 결성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고무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VC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모태펀드는 정부의 출자액에 맞춰 운용사가 비슷한 규모의 민간 자금을 ‘매칭’해 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 들어 역대 최대 규모의 정책자금이 풀리면서 ‘매칭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예상대로 일부 운용사는 지난 6일 마감이 임박해서야 겨우 펀딩 작업을 마쳤다.

매년 4월께 확정되는 정부의 모태펀드 1차 정시출자 규모는 2018년 4930억원에서 지난해 619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1조원 이상으로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 차원에서 정부가 연초에 예산을 집중 집행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등 다른 정책 금융기관들도 경쟁적으로 출자에 나서면서 지난 4월에만 100개가 넘는 운용사들이 동시에 펀딩 작업에 들어갔다. 작년 한 해 벤처펀드 조성에 투입된 정책자금(약 1조3500억원)보다 큰 자금이 연초에 투입됐다.

여기에 스마트대한민국펀드, 한국형 뉴딜펀드 등 조 단위의 관제 벤처펀드 조성 계획까지 잇따라 쏟아지면서 민간의 투자 여력은 더욱 말라버렸다. 네이버, 신세계 등 대기업을 비롯해 금융사 등 주요 민간 투자자들이 이들 펀드에 동원되면서 지갑이 닫힌 것이다. 한 금융회사 직원은 “정책성 펀드에 돈을 대느라 일반 벤처출자 계획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이 풀린 정책자금은 벤처펀드 전반의 수익률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할 만한 기업이 제한적이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일부 자금은 투자 조건이 로운 경우도 많아 펀드 운용사들은 이래저래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 한 VC 관계자는 “펀딩이 워낙 어렵다 보니 출자액의 2~4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해당 지역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지방자치단체 사업에도 뛰어들어야 했다”고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