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는 지난달 기술콘퍼런스에서 엔비디아와 함께 ‘뉴럴 필터’라는 기술을 선보였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초보자도 쉽게 사진을 바꿀 수 있게 돕는 기술이다. 포토샵의 복잡한 기능을 몰라도 단순히 슬라이드바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진의 날씨를 바꾸고 오래된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할 수 있다.
몇초 만에 표정·나이 바꿔주는 AI
표정을 바꾸고, 얼굴 나이를 조절하고, 사진 속 날씨를 바꾸는 것까지 초보자도 손쉽게 사진을 편집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령 비가 오는 야외 결혼식 날 잔뜩 찌푸린 신부 얼굴이 담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햇빛이 쨍쨍한 날 축복받는 행복한 신부 표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사용자의 PC 성능과 상관없이 클라우드의 AI 덕분에 몇초 만에 작업이 끝난다. 예전 같으면 숙련된 전문가가 수시간을 들여야 했을 일을 누구나 몇 초 만에 바로 할 수 있다.
페이스앱과 포토샵 뉴럴 필터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은 같다. 둘 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해 진화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생성적 대립 신경망)’ 기술은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자’와 이미지의 진위 여부를 감별하는 ‘판별자’를 경쟁하게 하는 방식으로 학습한다. 범죄자는 더 정교한 위조지폐를 만들려 하고, 경찰은 더 섬세한 판별기로 위조지폐를 찾아내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가 탄생한다. 더 많은 이미지를 학습할수록 실제와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GAN 같은 AI 기술을 활용한 사진이나 영상을 ‘딥페이크(deepfake)’라고 부른다. 딥러닝과 가짜란 말의 합성어다. 이런 기술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삼성 AI 포럼에서 ‘뉴럴 아바타’를 소개했다. 사진 한 장만으로 실제 대화하는 것 같은 3차원(3D) 얼굴 영상을 구현했다. 원격 화상회의에서 내가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미리 저장해놓은 사진으로 내 아바타를 만들어 화면에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기술로 딥페이크 막을 수 없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딥페이크란 단어 뒤에는 가짜뉴스나 음란물이 따라붙는 게 현실이다. 네덜란드 사이버 보안기업 딥트레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가 찾아낸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은 1만4678건으로 전년 대비 84% 늘었다. 이들 가운데 96%가 유명인의 얼굴을 음란물 영상에 끼워넣은 것이었다. 딥트레이스는 250장의 사진만 있으면 이틀 안에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가짜 사진과 영상을 구분하는 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업 역시 AI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어도비는 지난달 열린 콘퍼런스에서 AI로 사진을 합성하고 변경하는 일은 물론 특정 사진이 수정·합성됐는지 찾아내는 기술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가짜 뉴스 등에 대응하기 위해 ‘콘텐츠 진위 이니셔티브(Content Authenticity Initiative)’를 설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퀄컴 등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뉴욕타임스, BBC 등 언론사도 포함됐다.
하지만 ‘방패’보다 ‘창’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른 게 현실이다. 기술 발전으로 누구나 사진을 조작하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악의’를 갖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딥페이크를 기술로 막는 일은 불가능하다.” AI로 가짜 영상을 판별하는 탐지 도구를 개발한 마니시 아그라왈라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의 경고다. 그는 가짜 영상을 배포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기술이 아닌 제도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 듣는 것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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