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재 풀' 키우는 싱가포르…年 8000억원 이상 '통큰 투자'
싱가포르는 기술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면서 미래 교육과 일자리 체계를 잘 구축한 국가로 꼽힌다. 세계 최대 금융컨설팅 업체 올리버와이먼이 올해 인공지능(AI) 준비 정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싱가포르는 1위에 올랐다. 기술 교육 및 활용을 통해 삶의 질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까지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싱가포르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2015년 국가 아젠다로 ‘스킬스퓨처(Skills Future)’를 내걸면서다. 스킬스퓨처는 ‘기술이 미래다’라는 의미로 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오랜 경력을 보유한 기술자까지 정부가 평생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싱가포르 교육부 산하 법정기구인 ‘스킬스퓨처 싱가포르(SSG)’가 주도하고 있다. 마이클 펑 스킬스퓨처 부대표(사진)는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AI에 눈을 뜬 디지털 인재를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펑 부대표는 오는 12일 열리는 ‘글로벌인재포럼 2020’에서 ‘AI 시대 주도권 잡기, 골든 사이클에 올라타라’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그는 “AI 등 디지털 시대 기술은 일상생활, 업무, 타인과의 소통 방식 등을 뿌리째 바꾸고 있다”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도약하려면 디지털 역량을 갖춘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AI에 적응하는 체질 만들어야”

펑 부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과 가치가 더욱 도드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기업들과 그 직원들이 원격 업무, 사업 프로세스, 비대면 소통 및 학습의 디지털화를 겪으면서 디지털 기술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신규 사업모델을 도입하거나 직원 역량을 높이는 기업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준비가 안 된 국가가 더 많다고 진단했다. 펑 부대표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디지털 기술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정도로 인식해선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AI시대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AI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면 직면할 경제·사회적 효과와 AI 대체로 인한 일자리 감소, 부작용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하며 필요한 정책이나 규정, 전략 등을 미리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AI시대가 본격화하기 전에 이 같은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즉 적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놔야 한다는 조언이다. 펑 부대표는 “앞으로는 AI를 활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국가 발전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AI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혼란을 헤쳐나갈 ‘디지털 인재’를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펑 부대표가 꼽는 디지털 인재의 요건은 크게 네 가지다. 무엇보다 데이터 조작과 통계, 수학, 프로그램 등에 대한 기술적 이해력을 갖추고 호기심도 많아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겸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협업하는 역량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펑 부대표는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를 적극적으로 양성해 강력한 인재 풀을 구축해놔야 한다”며 “이에 따라 국가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개발에 거액 투자하는 싱가포르

그는 싱가포르의 스킬스퓨처가 이 같은 인재 양성을 위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펑 부대표는 “싱가포르는 2015년 스킬스퓨처 운동으로 평생학습 문화를 구축했고,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역량을 개발하는 토대를 조성했다”며 “수십 년에 걸쳐 인력 개발에 투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스킬스퓨처 운동을 통해 각종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했다. 정부가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급해 전 국민의 평생 교육 및 학습을 활성화한 것이다. 국민들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모든 국민을 핵심 인재로 육성하자는 것이 취지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10억싱가포르달러(약 8294억원)가 스킬스퓨처에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2010~2015년 인력 개발 및 지원에 연간 6억싱가포르달러(약 4976억원)가 배정됐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신기술 습득 등을 원하는 국민에게 3년간 1억4500만싱가포르달러(약 1203억원)도 지원한다. 펑 부대표는 “싱가포르가 인력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건 그만큼 국가 인재 풀의 역량을 늘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등을 극복하고 경쟁력 있는 주체가 되려면 가급적 빨리 디지털 기술 토대를 닦아야 하는데 기술 변화가 빨라진 데다 교육 및 훈련은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서 평생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업과 개인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과 개인에겐 이 같은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펑 부대표는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하고, 개인은 새로운 기술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마이클 펑 약력

△1997년 미국 카네기멜론대 전기 및 컴퓨터 공학 석사
△2015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혁신학자상 수상
△2017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육학 박사
△2017년 스킬스퓨처 쿨 이노베이션 어워드 수상
△2017년~ 아시아고등교육계획협회장
△2018년~ 스킬스퓨처 싱가포르 부대표


■ 스킬스퓨처

‘기술이 미래다’란 의미. 싱가포르가 2015년 국민의 평생교육 및 학습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내건 국가 아젠다다. 모든 국민을 핵심 인재로 육성한다는 목표다. 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오랜 경력을 보유한 기술자까지 정부가 평생 직업훈련을 제공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