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려는 자산운용사들이 수수료(보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장악하고 있던 나스닥 ETF 시장에 지난달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세계 최저 보수’를 표방한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KB자산운용은 이보다도 낮은 보수의 경쟁 상품을 상장했다. 나스닥 ETF 1위인 미래에셋운용도 보수를 끌어내리면서 ETF 시장 내 운용사들의 출혈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ETF, '세계 최저 보수' 출혈경쟁
KB자산운용은 지난 6일 미국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KBSTAR미국나스닥100 ETF’를 상장했다. 이 펀드의 총보수는 연 0.07%에 불과하다. 세계의 나스닥100 ETF 가운데 최저 수준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연 0.09% 보수 구조의 ‘KINDEX미국나스닥100 ETF’를 내놓은 지 1주일 만에 ‘세계 최저 보수’ 기록을 다시 한번 깨버렸다.

자산운용업계의 ‘나스닥100 ETF 전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에셋운용은 12일부터 ‘TIGER미국나스닥100 ETF’와 ‘TIGER미국S&P500 ETF’의 보수를 각각 연 0.49%와 0.30%에서 공통적으로 0.07%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TIGER미국나스닥100 ETF는 국내 최초의 나스닥지수 추종 ETF로, 국내 나스닥ETF의 88%를 차지하는 사실상의 독점 상품이다. 미래에셋운용이 보유한 주식형 ETF 가운데 순자산 기준 3위를 차지하는 주력 상품의 보수까지 끌어내리면서 경쟁에 합류한 것이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들이 보수 경쟁을 벌이는 이면에는 ETF 시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실질적으로 ETF 산업을 통해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하는 운용사는 업계 1위 삼성자산운용과 2위 미래에셋운용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시장이 수년째 ‘고사 상태’에 머무르고, 대안이었던 대체 투자와 사모펀드 투자도 각각 코로나19 사태와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크게 위축된 가운데 유일하게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분야가 ETF다. 이런 ETF 시장에서 양강체제가 형성되면서 후발 주자 위치에 선 운용사들은 보수를 끌어내리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서라도 시장점유율(MS)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선 최저 보수 상품인 ETF의 성격을 감안하면 보수는 투자자들의 실제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마케팅 담당 임원은 “보수 경쟁은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며 “1년 이내의 단기투자자들은 펀드의 연 보수보다 거래 증권사의 매매수수료나 해당 ETF의 괴리율 및 유동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단기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운용사들의 경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10일 삼성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에 호응하는 ‘FnGuide K-뉴딜 디지털플러스 ETF’를 1개씩 상장시켰다. 이 중 삼성운용과 KB운용의 K-뉴딜 ETF는 총보수가 0.09%로 결정됐다. 이는 앞서 미래에셋운용이 지난달 출시한 국내 첫 K-뉴딜 ETF인 ‘TIGER BBIG K-뉴딜 ETF’보다 0.31%포인트 낮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