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新청량산유람기
바야흐로 단풍철이다. 집 문밖에만 나서도 만산홍엽이다. 늦은 가을에 경북 봉화에 다녀왔다. 봉화는 지금까지 송이버섯의 산지라고 한두 번 들어본 적이 있을 뿐, 그 땅을 밟아본 적은 없다. 봉화를 간다기에 소나무 숲에 가서 송이버섯 두어 개 따고 오겠거니 했다.

문수산 휴양림에서 맞은 아침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시렸다. 낙동강의 발원지에서 시작해 강이 휘돌아 흐르는 길을 따라 종일 걸어보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봉화에 작은 산이 있는데 잠깐 다녀오자고 한다. 하늘도 높고 바람도 소슬하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산이었다. 각도기를 가져다 각도를 재보면 거의 45도는 나옴 직하다.

산세가 가파르니 한 발자국을 옮기기에도 숨이 차다. 이 산 높이가 870m인데, 산 아래서 정상까지 제일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산이라고 한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깐 착각에 빠졌다.

가까스로 도착한 산사는 의외로 고요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산이나 절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산사는 분지처럼 산속에 폭 싸여 있다. 뒤편은 높고 가파른 석벽이 딱 버티고 있고, 좌우는 단풍이 출렁이는 산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앞은 일망무제로 탁 트였다. 내가 있는 곳은 연잎으로 치면 꽃술 자리가 아닌가. 사면이 둘러싸여 있어 바람 하나 통할 것 같지 않은데 어디서 이리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나 했다.

사찰을 소개해 주는 해설사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고 이 절 이름이 청량사라고 한다. 청량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가 창건했고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는 굵은 글씨의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이라는 설명이다. 퇴계 이황 선생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청량산에 여러 번 다녀갔다 한다. 풍경은 부는 바람에 계속 딸랑거리고 때맞춰 치는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단풍은 바람 따라 흐르니 낙엽이 꽃비처럼 흩어진다.

조금만 더 가면 하늘다리를 볼 수 있다 하니 안 가볼 수 없다. 깎아지른 절벽 곳곳을 물들인 단풍 아래서 나는 은행잎이 되고 떡갈나무가 됐고 붉은 단풍이 됐다. ‘먼 곳 차가운 산 돌계단은 아래로 경사지고 흰 구름 어디서 오나 했는데 인가에서 오는 것일세. 수레를 멈추고 앉아서 늦가을 단풍을 보노라니 서리 맞은 단풍이 2월의 꽃보다 더 붉구나’라고 노래한 당나라 때 두목의 ‘산행’이라는 시 한 수가 절로 읊어진다. 하늘다리에 오르니 봉화가 첩첩산중 발아래 펼쳐진다. 연적봉의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서 탁필봉 자소봉을 바라보니 백두대간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이래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청량산 유람기를 그토록 많이 남기고 싶어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