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인공지능(AI) 관련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던 전략을 바꿔 글로벌 상장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종합 투자회사로 변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콘만 키우던 소프트뱅크, 종합투자회사로 변신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난 9일 실적 발표를 통해 올 9월 말 기준 미국 상장 정보기술(IT) 대기업 주식을 165억달러(약 18조3975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투자 대상과 규모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마존닷컴과 페이스북,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넷플릭스 등 ‘FANG’ 주식에만 109억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해 11개 이상의 IT 대기업에 자금을 투입했다.

지금까지 소프트뱅크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를 통해 AI 관련 유니콘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투자 기업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자 투자처를 다양화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마디로 정보혁명 전문 투자회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유니콘 기업은 AI 혁명의 ‘루키’지만 주력은 역시 상장사들”이라며 상장 IT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앞으로도 유니콘 등 비상장기업에 투자를 이어가겠지만 전체 보유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으로 유지할 것이란 목표도 제시했다. 현재 비전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기업 주식 비중은 약 8%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의 경영진도 물갈이했다. 차량 호출서비스 업체 우버 등에 대한 투자를 주도한 라지브 미스라 최고경영자(CEO)와 마르셀로 클라우레 최고운영책임자(COO), 사고 가쓰노리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본사를 영국 런던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본사 이전은 비전펀드에 150억달러를 투입한 아부다비 국부펀드와의 접근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본사 이전으로 세금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손 회장이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 시장에 대한 견해를 바꿀지도 관심을 모았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고 500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손 회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AI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며 “국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투자처를 물색하겠다”고 했다.

종합 투자회사로 바뀐 소프트뱅크의 과제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9월 말 기준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알리바바의 주식 가치는 20조엔(약 212조원)가량으로 전체 보유 주식(31조엔)의 70%에 달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