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마저 무시한 채 인도를 점령한 공유 전동킥보드.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마저 무시한 채 인도를 점령한 공유 전동킥보드.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차도와 인도를 위험하게 오가는 전동킥보드 사고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공유 전동킥보드 사업자들은 "문제는 사용자"라며 안전을 위한 투자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3년 새 18배 늘어난 킥보드 사고…정부만 '골치'


우리 주변의 공유 전동킥보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서울시에서 운영되는 공유 전동킥보드는 150여대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2년 만에 239배 증가한 3만5800여대에 달했다.

전동킥보드 사고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13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49건에 그쳤던 전동킥보드 이용자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급증해 지난해는 890건을 기록했다. 3년 만에 18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지난해 사고건수에 육박하는 886건이 발생했다. 사고가 늘어나자 '킥라니'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전동킥보드 이용에 마땅한 규정이 없다보니 사용자들이 고라니처럼 이곳 저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시민들의 불만이 반영됐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전동킥보드 사고가 늘자 정부도 팔을 걷었다. 내달 10일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전동킥보드를 '개인형 이동장치'(PM·Personal Mobility)로 규정한다. 최고속도는 25㎞/h, 총 중량은 30㎏ 미만인 전동킥보드에 대해 자전거와 동일한 안전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자전거와 같은 규정을 적용하면서 전동킥보드 이용 문턱이 낮아지고 사고 위험도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운전면허가 있어야 이용이 가능했지만, 내달부터는 이용자 기준이 만 13세 이상으로 낮아지고 면허도 필요치 않아진다. 국내 자전거도로 70%가량이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상황에서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주행이 허용될 경우 보행자 사고 위험 증대도 예상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해 최근 전동킥보드 지정차로제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3차로 이상 차도의 오른쪽 끝 차로에서 전동킥보드가 다닐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정부와 국회에 법 개정을 건의하는 수준이기에 실질적인 이용자 안전을 보호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 2명이 차도로 주행하고 있다. 사진 =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 2명이 차도로 주행하고 있다. 사진 =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해외는 정부와 업계가 안전에 '맞손'


해외에서는 정부와 업계가 안전 확보에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는 전동킥보드를 보행자 도로에서 이용할 경우 135유로(약 19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싱가포르도 전동킥보드의 보행자 도로 침범에 징역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도 사고 방지 대책 마련에 앞장선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서비스를 제공중인 '티어'는 손잡이 아래에 접이식 스마트 헬멧을 내장한 전동킥보드를 보급하고 있다. 헬멧에는 사용자의 착용 여부를 감지해 전동킥보드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이 담겼다. 미국 전동킥보드 업체 '스핀'도 킥보드에 안전모를 장착하고, 탈착해야 전동킥보드 잠금이 풀리도록 하는 등 안전대책을 강화했다.

해외 업체들은 헬멧 착용을 강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내에서 영업 중인 주요 업체들은 "캠페인 등 안전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도 실질적인 장비 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근에는 운전면허증 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업체인 라임은 전동킥보드를 대여하며 운전면허증 소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다가 지난 4월 부산에서 사망사고를 낸 바 있다. 지난달에도 인천에서 고교생 2명이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택시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유 킥보드 업체 티어는 전동킥보드에 접이식 헬멧을 수납했다. 사진=티어
공유 킥보드 업체 티어는 전동킥보드에 접이식 헬멧을 수납했다. 사진=티어

국내 전동킥보드 사고는 사용자 책임?


국내 주요 공유 전동킥보드 업체들에 확인한 결과, 업체들은 안전대책의 일환으로 사용자 인식개선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만 헬멧 착용, 2인 탑승 금지, 음주운전 금지 등을 강제하는 수단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라임 관계자는 안전대책 방안에 대해 "내달 10일 개정안 시행과 별개로 만 18세 이상 이용 연령 정책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전모 비치에 대해서는 "따릉이 안전모 비치 시범 운영 당시 분실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설치 방안을) 논의중"이라고만 답했다.

빔은 주행 전 '퀴즈'를 실시해 사용자가 안전한 주행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고, 헬멧 착용·음주운전 금지 등 다양한 문구를 담은 태그를 킥보드에 달아 안전한 주행문화를 독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빔 함께하는 라이드 캠페인 이미지(왼쪽)·부천시에서 진행된 ‘합동 안전 캠페인’ 모습. 사진 = 라임코리아·빔 제공
빔 함께하는 라이드 캠페인 이미지(왼쪽)·부천시에서 진행된 ‘합동 안전 캠페인’ 모습. 사진 = 라임코리아·빔 제공
국내 1위 공유 킥보드 업체 씽씽은 사고처리를 위한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있다. 씽씽 관계자는 "사용자 안전과 주차 문제가 그간 업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유 킥보드에 세계 최초로 블랙박스를 탑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 블랙박스 탑재 전동킥보드가 상용화되면 사용자가 경각심을 갖고 운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사고를 사전에 막기위한 조치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유 전동킥보드 사고의 근본 원인이 사용자의 인식에 있으며, 개선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전문가는 수익을 내는 업체들이 책임지지 않고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업체는 수익을 내는 입장"이라며 "인식 개선을 기다릴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내놓고 정부와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도 기존 법규에 전동킥보드를 끼워 맞추기보다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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