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정의로운 가격'의 함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시장 거스르는 가격억제 정책
이윤추구 욕구 못 바꾸고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들 뿐
시장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데 효과적
이인호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
이윤추구 욕구 못 바꾸고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들 뿐
시장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데 효과적
이인호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
![[다산 칼럼] '정의로운 가격'의 함정](https://img.hankyung.com/photo/202011/07.21503851.1.jpg)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건의 가격이다. 가격은 여러 물건 사이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강남 집값과 지방 집값의 비교는 사람들이 어느 지역의 집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색깔 옷을 좋아하는지가 정의와 무관하듯이 가격은 사람들이 어느 물건을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알려줄 뿐이고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선호해 가격이 높게 정해지는 것이 정의로운지와는 무관하다.
시장에서 가격 수준은 수요와 공급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부동산의 경우 강남 집들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은 것이 높은 가격의 원인이고, 임금의 경우 비숙련 노동자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은 것이 낮은 임금의 원인이다. 구체적으로 가격은 수요자와 공급자 간 흥정을 통해 결정되는데 이 장면에서 시장에서 강자와 약자가 결정된다. 즉 수요와 공급 중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쪽에서 서로 간에 경쟁이 심하고 결과적으로 흥정력이 약해져서 약자의 처지에 처하게 된다.
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과 최저임금의 인상을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런 목표를 설정한 배후에는 시장에서의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로운 정책이라는 생각이 깔린 것 같다. 정부가 시장의 약자를 돕고 보호한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가격을 억지로 정의로운(?) 수준으로 정하는 것이 시장의 약자를 돕지 않는다.
가격은 시장의 강자와 약자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상쇄시키는 작용을 한다. 집값이 높으면 새로운 집을 공급해서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공급이 증가해 부동산 시장의 강자인 공급자 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가격의 안정을 가져온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완만하게 만들면 비숙련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들의 채산성이 좋아져서 보다 많은 고용 수요가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고용과 임금이 함께 올라가게 된다.
시장의 가격은 사람들이 물건에 대해 얼마의 가치를 두는지를 알려주는데 그 정보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게 되므로 그것을 생산해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잠재적 이윤의 존재는 사람들이 그런 재화에 대한 공급을 늘리도록 유인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원리가 작동한다.
그 목적이 어떻든 이 원리를 거스르는 가격 억제 정책은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이윤 추구 욕구를 바꾸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유인과 충돌하는 정책은 오히려 원래의 정의롭지 못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시장의 약자들을 더 약하게 만들 뿐이다. 시장은 나름대로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약하게 만드는 경로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를 이용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데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