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크뢸러뮐러미술관은 2012년 작자 미상으로 분류됐던 ‘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라고 확인했다. 1998년 엑스레이 촬영 때는 꽃 그림 밑에 숨겨진 게 두 남자의 누드로 보였지만 매크로 엑스레이 형광분석법으로 조사한 결과 레슬링을 하는 모습인 게 확실했다. 고흐는 1886년 1월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번주엔 대형 나체 흉상과 두 명의 레슬러를 그렸어. 아주 즐거웠어”라고 했다. 미술품과 문화재 등의 보존 및 관리에서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 과학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미술품 보존과학 이야기다. 책을 쓴 김은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국내에 10여 명뿐인 미술보존가다. 바티칸의 시스티나대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벽화 복원 장면을 보고 미술품 복원의 매력에 빠져 영국에서 회화 보존을 공부했고, 건국대에서 현대미술 보존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에는 미술품 복원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와 미술품 복원에서 과학이 활용된 구체적 사례, 미술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미술관의 노력 등이 다채롭게 담겼다.

‘야간순찰’로 알려진 렘브란트의 대표작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반 루이텐부르크의 순찰대’는 원래 밝은 낮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왜 ‘야간순찰’이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표면에 두껍게 칠한 바니시(varnish)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되고 그 위에 먼지가 쌓였다. 그러면서 ‘주간순찰’을 묘사했던 그림은 빛을 잃어갔다. 1940년대 복원 과정에서 두껍게 칠해진 바니시를 제거하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밝은 빛이 다시 드러났다.

레이저를 이용한 조각품 표면 복원, 에드바르 뭉크 작품을 두고 보존가가 ‘절규’하는 이유, 보존처리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의견 대립과 실패 사례 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미술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고 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