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왼쪽부터),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 김현석 생활가전(CE)부문 사장 등 삼성 경영진이 12일 서울 우면동 서울R&D 캠퍼스에서 운동과 수면 습관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로봇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부회장(왼쪽부터),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 김현석 생활가전(CE)부문 사장 등 삼성 경영진이 12일 서울 우면동 서울R&D 캠퍼스에서 운동과 수면 습관 등을 체크할 수 있는 로봇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후 중단했던 현장경영을 재개했다. 이 부회장이 새로 꺼내든 화두는 ‘디자인’이다. 기술이 뛰어나도 디자인이 떨어지면 일류가 될 수 없다고 했던 이 회장의 ‘디자인 경영’을 한 차원 발전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디자인 회의에 삼성 CEO 집결

이 부회장은 12일 서울 우면동 서울 R&D(연구개발) 캠퍼스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어 “다시 한 번 디자인 혁명을 이루자. 디자인에 혼을 담아내자”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이 회장 별세로 중단했던 현장경영을 재개하면서 꺼낸 첫 메시지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사업부 단위로 이뤄졌던 전략회의의 격을 한 단계 높여 주요 사업 부문 핵심 경영진을 모두 불렀다는 점도 화제였다.

회의엔 김현석 삼성전자 생활가전(CE) 부문 사장, 고동진 IT·모바일(IM) 부문 사장,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사장), 노태문 무선사업부장(사장), 최윤호 경영지원실장(사장), 승현준 삼성리서치 연구소장(사장), 이돈태 디자인경영센터장(부사장) 등 핵심 경영진이 모두 참석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 부회장 발언을 ‘초격차 전략의 확대’로 해석하고 있다.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경쟁 업체를 압도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분석이다. 회사 관계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통합 디자인 역량’이 중요해졌다는 게 이 부회장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의 유산 승계

삼성의 디자인 경영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며 “디자인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TV가 삼성이 고집스럽게 이어온 디자인 경영의 대표적인 성과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2006년 와인 색깔을 입힌 ‘보르도 TV’를 내놓으며 ‘철옹성’으로 불렸던 소니를 넘어섰다.

삼성의 ‘디자인 DNA’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등에 있는 글로벌 디자인연구소 일곱 곳에서 1500여 명의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제조업체에선 보기 드물 만큼 디자인 분야에 투입하는 자원이 많다. 마음대로 다양한 색깔의 패널을 갈아 끼우는 비스포크 냉장고 등 디자인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히트 상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다시 한 번 디자인을 강조한 배경을 ‘좋은 디자인’의 개념이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최근엔 기술 발달로 여러 기기가 하나로 연결되고 제품과 서비스의 융·복합화 속도도 빠르다. 이런 시기엔 ‘미려한 외관’ 못지않게 ‘디자인의 편의성과 통일성’이 중요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은 이미 많은 소비자가 외관보다 사용자 환경(UI) 디자인을 보고 제품을 고른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부회장이 디자인과 함께 제시한 키워드는 위기와 도전이었다. 그는 이날 “도전은 위기 속에서 더 빛난다. 위기를 딛고 미래를 활짝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국의 정권 교체 등으로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끌려가지 말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라는 메시지라고 삼성 측은 풀이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