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상 통치행위는 수사대상 아니나 집행중 개별 불법행위는 대상
감사방해의혹은 명백한 수사대상…경제성 평가조작의혹은 견해 엇갈려
[팩트체크] 월성원전 수사는 '통치행위' 겨냥? 검찰의 월권?
검찰이 감사원 감사과정에서 불거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에 대해 압수수색 등 본격 수사에 착수하자, 정부와 여당 일각에선 '정부의 정책에 대한 수사는 수사권한 남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최근 검찰이 정부 정책(탈원전)을 수사하며 국정에 개입하는 정치 행태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1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고, 정부의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그야말로 정치적 목적의 편파, 과잉수사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검찰이 '위법행위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맞서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 법원·헌재 "통치행위는 사법 판단 대상 아냐"
우선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집행에 대해 검찰이 사법 작용의 일환인 수사를 하는 것은 부적절할까?
'어떤 행위가 사법적 판단 영역에 해당하는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정책 결정·집행과 같은 이른바 '통치행위'에 대해선 사법기관의 개입이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2004년 3월 대법원은 '남북정상회담(2000년) 대북송금 사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당부(當否·옳고 그름)를 심판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통치행위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다.

헌재도 2004년 4월 '국군 해외파병 결정' 사건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관계분야의 전문가들과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그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파병 결정은 정부의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고, 당연히 헌법재판의 대상도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팩트체크] 월성원전 수사는 '통치행위' 겨냥? 검찰의 월권?
◇ "통치행위 중의 개별 불법행위는 판단 대상…기본권 관련 사안도 대상"
다만 대법원과 헌재는 통치행위와 관련된 모든 행위가 사법적 판단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밝힌 바 있다.

대법원은 앞서 남북정상회담 대북송금사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과정에서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아니하거나 통일부 장관의 협력사업 승인을 얻지 아니한 채 북한측에 사업권의 대가 명목으로 송금한 행위 자체는 헌법상 법치국가의 원리와 법 앞에 평등 원칙 등에 비추어 볼 때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통치행위 자체와 통치행위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행위는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뿐만 아니라 통치행위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경우에도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1980년 5월)' 사건에서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도 1996년 2월 '금융실명제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사건에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팩트체크] 월성원전 수사는 '통치행위' 겨냥? 검찰의 월권?
◇ '원전 감사 방해'는 명백히 수사대상…'경제성 평가조작'엔 다른 견해도
대법원과 헌재의 이 같은 판단 전례를 고려할 때 검찰의 이번 원전수사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닌 '통치행위'에 대한 수사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일까?
검찰의 원전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때문에 '수사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각각 따질 필요가 있다.

우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감사 방해 의혹에 대한 수사는 통치행위와 무관하기 때문에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감사원의 추가자료 제출 요구에 앞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무더기로 삭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감사를 방해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감사원법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정책 결정·집행의 영역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므로 당연히 수사 대상이 된다.

반면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즉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는 의혹을 겨냥한 수사에 대해서는 견해가 미묘하게 엇갈린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부 탈원전 정책의 당부(當否)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정책 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범죄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말했다.

반면 김형준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부서의 재량권이 얼마나 인정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경제성 평가가 재량권 내에서 이뤄진 평가라면 수사대상으로 부적절하고, 재량권을 일탈한 행위가 있었다면 수사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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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