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하는 이재명 지사. / 사진=뉴스1
지난 13일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하는 이재명 지사. / 사진=뉴스1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괴로운 흙수저한테는 괜히 낳아놔서 괴롭게 했으니 미안하다고 인정 좀 해주고 노후대비로 자식 이용하지 말고 집안 문제로 손만 안 벌렸으면 좋겠음.”

이재명 경기도지사(사진)가 14일 “투박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학술논문보다 통찰력 있다. 이만큼 오늘날 양극화 사회의 풍경을 제대로 드러내는 글이 있을까 싶다”면서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의 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 13일 네이트 판 게시판에 올라온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 제하 장문의 글.

자신을 20대 초반의 ‘가난한 집 생존자’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가난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부모님 싸우는 문제 80퍼(센트)가 돈 때문. 자식들은 그거 보면서 달달 떨고 같은 동네 친구들은 각양각색으로 불행 서사 깔고 시작함”이라며 “그러다 중학교 올라가고 뺑뺑이로 어쩌다가 학군 괜찮은 부촌 걸리면 더 지옥. 나만 다른 세상, 나만 못 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집 애들과 중산층 집안 애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이 다름. 쟤네한테 나는 인간으로 보이긴 할까 생각도 들었음”이라고 썼다. 이어 “흙수저 부모님은 학원이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 인강(인터넷강의)으로 때우라고 하는데 학원은 10대 애들끼리 친목도 하는 곳이라는 걸 이해 못함”이라면서 “사실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로 보임. 본인 먹고사는 일도 퍽퍽하다고 느껴서 애들 문제는 작게만 보이니까 공감해주길 귀찮아한다고 느꼈음”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 사례를 여럿 든 글쓴이는 “카스트 제도처럼 정해진 순리대로 살아가게 만들어 놓고 긍정을 강요해봤자 집을 뛰쳐나가 절연하고 비혼하고 살 궁리만 하지, 가족관계는 파탄 나고 진전되지 않음”이라고 썼다. 또 “국장(국가장학금)으로 학비 내고 방학 때 알바(아르바이트) 풀타임 뛰면 그럭저럭 대학 생활 무난하게 마칠 수 있는데 집 때문에 학자금 대출 풀로 땡겨서 부모님 드리고 자긴 빚더미에서 시작한다는 흙수저 선배들 보면 그냥 안쓰러움. 그것이 흙수저 생의 대물림”이라고 강조했다.

이 게시글에 대해 이재명 지사는 “읽다 보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제 얘기 같으면서도 요즘 시대 가난의 결이란 더 극명하고 촘촘하게 청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구나 절감한다”면서 “요즘의 가난한 집 청년들은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상처 입고, 부동산 격차로 무시당하고, 어릴 때 예체능 학원 다녀보지 못해 박탈감 느끼고, 그렇게 부모로부터 경험 자본과 문화 자본을 물려받지 못해 생기는 간극으로 좌절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구조화된 불평등의 양상이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라고 역설한 뒤 “이 청년 전태일들에게 개인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다그치거나 섣불리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고 훈계하는 것이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한 방식일까. 당장 매 순간 상처 입고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좌파니 우파니 하는 소리가 얼마나 뜬구름 같은 소리겠느냐”고 곱씹었다.

해당 게시글이 올라온 13일은 공교롭게도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이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2020년 가난의 결. 이 대다수 청년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 변화의 정치에 함께 하도록 손 내미는 일, 아주 사려 깊고 끈기 있게 해야 할 일”이라면서 “낡고 나이브한 청사진으로는 바로 ‘손절’ 당할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