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고도 1주일 이상 법률상 당선인 지위를 못 누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하며 정권 인수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인수위원회는 “정보 공유,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해 정권 인수 작업이 늦어지고 국가안보도 위험에 처해 있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요지부동이다. ‘바이든 시대’가 열렸지만 앞날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 같다.

바이든의 최대 과제는 백인과 유색인종, 시골과 도시 등으로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반쪽, ‘트럼프의 나라’를 어떻게 끌어안느냐는 것이다.

바이든 최대 과제는 민심 통합

바이든은 선거인단에서 306 대 232로 압승했지만 당락을 가른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조지아 등 주요 경합주 득표율 격차는 1%포인트 미만의 박빙이었다. 트럼프는 전국 득표에서 바이든(7865만 표·50.8%)에게 밀렸지만 7310만 표(47.2%)를 얻었다. 이는 역대 공화·민주당 후보 통틀어 최다 기록인 2008년 버락 오바마의 6950만 표보다 많은 수치다. 코로나와 경기침체, 인종 갈등 등 악재가 쏟아진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는 예상 밖으로 선전했고, 바이든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미국 주류 언론은 이번 대선이 코로나 위기에 잘못 대처하고, 막말과 거짓말로 미국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백인 우월주의와 분열을 조장해온 트럼프에 대한 심판장이 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7300만 표로 상징되는 ‘트럼피즘(트럼프식 정치)’의 영향력도 확인됐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 상대를 악마화시키는 음울한 시대는 여기서 끝내자”는 바이든의 승리연설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민주당 내 급진좌파의 공세도 바이든이 넘어야 할 산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은 벌써부터 주요 장관직을 비롯해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은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들 지지층의 표를 끌어오지 못한 점을 교훈 삼아 이번엔 이들과 손을 잡고 도움도 받았다. 그래서 이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도파인 바이든이 전국민 의료보험, 대학 학자금 탕감, 경찰 예산삭감 등과 같은 급진적인 정책을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공화당과 '협치' 없인 전진 못해

더욱이 바이든은 반(反)트럼프 연대에서 가장 당선 가능한 후보로 민주당이 내세운 인물이었다. 고령(77세)이라 재선 도전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당내 리더십도 견고하지 않다. 트럼프 퇴진에 성공하자 벌써부터 중도파와 좌파 간 대결이 본격화되고 있다. 상원을 탈환하지 못하고 하원에서도 의석수가 줄어든 데 대해 중도파는 “사회주의 급진좌파 때문에 중도층이 이탈했다”고 공격하고, 좌파세력은 “진보정책을 더 밀어붙이지 못해 졌다”고 주장한다. 2년 뒤 중간선거 때까지 정체성을 놓고 한바탕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바이든은 공화당의 벽도 넘어야 한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여소야대 형국이다. 미국 대통령의 파워가 막강하다지만 세제, 재정 등에서 큰 정책 전환은 의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은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친환경 인프라, 교육, 의료보험 등에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비롯한 성장 중심 경제정책을 분배 중시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감세정책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공화당이 버티고 있는 한 바이드노믹스는 구호에 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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