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21세기 아라비안나이트] 조 바이든 시대, 미국의 중동 정책
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에 중동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환영 일색이다. 친이스라엘 정책, 이슬람 급진세력 소탕, 안보시장 관리라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 기본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보다는 낫겠지 하는 자조 섞인 희망이 팽배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 4년은 대부분 중동국가와 이슬람 세계에는 고통과 패배의 시기였다. 국제사회의 상식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한 이스라엘 결정에 따라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이스라엘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용인해 줬다. 중동 평화 로드맵의 핵심 골격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영이라는 ‘두 국가 해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힘들게 합의한 이란과의 포괄적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오히려 이란의 핵 개발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그는 특유의 협상가 기질을 발휘해 오랜 적대적 당사자였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같은 아랍국가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카타르, 오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국내 민심 동향을 살피며 이스라엘과의 외교 수립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트럼프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국가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바이든을 가장 반기는 쪽은 이란과 팔레스타인이고, 가장 껄끄러워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다. 이란과의 핵 협상을 복원하겠다고 공언해 온 바이든은 이란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단비와 같은 존재다. 팔레스타인에서도 ‘두 국가 공존’을 지지하는 바이든의 입장 확인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트럼프의 지원 중단 해소를 위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반이스라엘 무장투쟁의 선봉인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가장 먼저 그에게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권력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황태자에 대한 바이든의 입장은 매우 부정적이다. 우선 그는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국 무기가 내전에서 민간인 공격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사우디 내 여성 활동가와 정치적 반대 세력을 구금하고 있는 인권 문제는 물론, 2018년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사우디 황태자를 지목해 왔다.

전통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맹방인 터키와의 관계 개선도 바이든의 큰 과제다. NATO 공군력의 핵심 주체인 터키가 적국인 러시아제 S-400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도입해 실전 배치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바이든은 이를 친구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며 맹비난했고, 동부 지중해 유전 개발을 둘러싼 터키와 그리스의 갈등,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에서 터키의 깊숙한 개입을 두고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독재자’로 부르는 등 두 지도자는 입에 담기 힘든 설전을 벌여 왔다.

바이든은 누구보다 중동 문제에 정통한 정치 지도자다. 상원외교위원장과 버락 오바마 시대 때 부통령을 지내면서 이라크에만 최소 20여 차례 오가는 등 중동 문제를 현장에서 관리해 왔다. 그러면서 불개입 원칙을 주창하며 분명한 탈중동 정책 기조를 갖고 있다. 1991년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응징 반대를 필두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시리아 내전 개입과 2011년 NATO의 리비아 내전 개입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다.

중동지역의 희망과 기대와 달리 바이든의 앞길에는 암초가 즐비하다. 아랍 최대 원유 소비국이 된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거대 담론과 물량적 공세로 중동에 쇄도하고 있고, 시리아 내전 승리를 발판으로 새로운 군사적 확장 정책을 펼치는 러시아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친미 아랍국가들과의 외교 정상화와 연대를 통해 미국 이익을 지키겠다는 기존 정책 방향은 유지될 전망이다. 나아가 사우디-아랍에미리트, 카타르와의 외교관계 단절도 적극적으로 복원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중동 정책도 역동적인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